정형주 후보(39, 민주노동당, 성남 중원)를 만난 곳은 ‘2004 총선물갈이연대’가 자신들이 7일 발표한 지지후보가 ‘국민협약’을 체결하는 장소였다.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 모인 물갈이연대의 수도권 지지자들은 정치개혁, 부패척결, 지역주의 해소, 정치관계법 준수 및 정치자금 투명공개 등을 약속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대표후보들 중 정형주 후보가 제일 오른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민단체의 낙선, 당선운동이 모호한 기준에다 여당지지색이 뚜렷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어서인지 취재 열기는 시들한듯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언론의 카메라는 중앙에 위치한 김희선, 김홍신, 유시민, 임종석 후보 등에게 집중돼 있다.

“(다른 기자들과 달리)나만 열심히 찍고 있길래 유심히 봤죠. 매일노동뉴스였군요” 기자회견이 고마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렇게 만난 정 후보를 서울 안국동에서 지역구인 성남까지 내려가는 1시간30분 이상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밥 먹을 시간도 지역주민과 함께 해야 할 피를 말리는 접전을 치르고 있는 정 후보. 성남민주택시노조 조합원이 후보의 차량 운전을 맡아주고 있다. 그가 모는 자동차안에서 정 후보와 ‘언덕배기 성남, 민주노동당의 등정 10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남을 향해 달려갔다.

“임종석 후배, 그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물갈이연대의 지지후보로 같이 협약식을 치룬 후보들 중에는 열린우리당 오영식, 임종석 후보가 있다. 이들과 정후보의 공통점. 오영식, 임종석 후보가 전대협 1,3기 의장을 지냈고 정후보는 그들 사이 2기 부의장을 지냈다. 386운동권을 대표했던 전대협 세대가 대거 열린우리당을 통해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 이번 총선에서는 40여명의 전대협 간부출신들이 앞 다투어 공천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렇게 과거 동료들이 기존 정치권에 편입되어 전대협 시절을 추억으로 되돌리려 할 때 정형주 후보는 성남의 구시가지 지역인 중원구에서 벌써 3번째 진보정치의 길로 국회 입성을 위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임종석 의원이 이라크파병 추가파병에 찬성표를 던지자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라던 임 의원의 약속을 이제는 이행하라”고 일침을 가했고, 최근 임의원이 한-칠레 FTA에 찬성표를 던졌을 때도 다시 한번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었다.

그런데 이날 만난 정 후보는 “임 의원 개인에 대한 비판이기보다는 개혁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에 진출한 386을 향한 메시지였다. 예전의 정신과 신념으로 정치를 해야 우리의 몫을 다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그들’ 같은 정치인도 있어야 한다. 그들은 어찌되었건 개혁적인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에 수구보수가 되기는 틀려먹었다. 적어도 ‘초보적 민주주의’의 단계는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진보정당을 통해 집권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길을 가면 되는 거고 그들은 그들의 이미지로 보수 정치판을 희석시키는 정도만 해주면 된다. 그게 한계인 거고. 그리고 이번 총선을 기반으로 진보정치 세력이 성장하면 최상의 구도가 나오는 것 아닌가”

기존 정치판을 통해 금뱃지를 단 옛 동료들을 두려워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그 마음이 정후보를 10년이나 한 길을 걷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진보정당을 통한 집권에 대한 확신이 이런 ‘여유’를 갖게 해 주었을 것이라는 표현이 더 옳겠다.

5% 승부의 ‘스릴과 재미’가 있다

현역 택시운전기사 ‘운짱’님이 모는 차는 금방 성남 모란시장에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재래시장인 모란시장은 인근 광주나 판교 등지에서도 장을 보거나 구경을 하러 올 정도로 장날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이 곳에 총선 막바지의 후보들이 안 올 리가 없다. 정후보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미 판을 벌여 놓고 있던 유세차의 단상에 올라섰다. 그의 말에 집중하는 주민들이 늘어갔고 어느 새 청중들이 유세차 주위를 빙 둘러쌌다.

이미 성남에서는 정 후보의 인지도가 아주 높은 상태다. 3번에 걸친 출마에서 그의 지지율은 첫 출마였던 8년전 96년 8.4%, 4년전 2000년 21.5% 로 3배 가까운 상승률을 보였다. 탄핵 거품이 빠지지 않던 지난 3월말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10%대의 매우 낮은 지지율도 보였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열린우리당의 바람이 잠잠해졌고 지난 총선때도 마지막 여론 조사결과보다 2배가 넘는 득표를 했다는 점에서 정 후보 캠프 쪽은 ‘자신감’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수도권 당선유력 후보로 유력하게 꼽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세를 보고 있던 시민들에게 마구잡이로 물어봤다. 대부분은 아직까지 총선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 대다수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호감은 갖고 있지만 정당지지를 할 지 여부도 아직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지역 노인층에서는 민주노동당보다 개인 정 후보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아직까지 과격한 느낌이다”하면서도 “정형주는 확실한 사람”이라며 그의 연설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한 건설일용노동자는 “이번에는 일당을 포기하더라고 투표를 해서 민주노동당과 정형주 후보에게 꼭 표를 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후보는 “이번 선거는 철저하게 5% 싸움이다. 현재 지지율은 30%정도라고 보는데 35%가 당선 안정권이다. 남은 기간동안 부동층을 끌어 모아야 하는데 최근 열린우리당 이상락 후보의 ‘학력위조’ 사건이 터지면서 추가변수가 생기고 있다. 5%를 더 끌어 오는 일에 ‘스릴과 재미’가 더해지고 있다”고 씩씩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스릴과 재미’ 뿐이랴. 당사자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 그동안 성남 중원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다. 우선 가장 큰 것은 정 후보의 숙적이었던 민주당 조성준 의원의 민주당 탈당, 열린우리당 입당,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탈락 등의 일련의 과정이다. 탄핵 정국 이전까지도 조 의원의 의정활동 중 불성실한 국회 출석율과 저조한 입법 활동 등의 근거로 숙적과의 대결을 준비했지만 그와의 대결은 어찌되었건 피하게 됐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강풍 속에서 등장한 도의원 출신의 이상락 후보는 개인적 평가를 떠나 열린우리당과 정형주 후보와의 대결구도로 만들어 놨다. 그는 정 후보와 예전 이 지역에서 성남연합 활동을 함께 했고,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의원을 지냈으며,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 이번에 출마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과정에서 그가 도의원 시절 최종학력으로 기재한 충남의 ㅈ고등학교는 사실 다닌 적도 없으며 이 학교 졸업증명서까지 위조한 사실이 드러나 선거 막판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재개발, 일용노동자 문제 해결 의지

정후보는 서둘러 시장 유세를 정리하고 다시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성호시장으로 향했다. 성남 중원지역은 굴곡이 심한 지형 위에 주택과 아파트, 상가 밀집 등으로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지역으로 사실상 변변한 도시계획조차 없는 곳이다. 이 때문에 이웃 분당에 대해 느끼는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너무나 심하다. 대부분이 서민과 노동자, 영세상인이며 특히 일용건설노동자들 10만 명이 밀집해 있다. 이 때문에 정 후보의 의정활동의 최우선 과제가 바로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고 말한다. 70~80년대 농촌을 등지고 돈을 벌겠다는 일념하나로 올라온 상경인구가 모여 도시를 이룬 성남은 구시가지 주거민 대부분이 일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재개발 역시 지역 최대 현안이다. 이날 마지막으로 들른 성호시장의 상인들은 정후보를 붙잡고 “시장 재개발을 한다고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니 어쩌며 좋냐”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천당 밑의 분당’이라는 밝은 도시 옆에 위치한 구시가지 중원은 낡은 건물과 좁은 도로로 이루어진 회색빛 도시다. 그 어두운 도시에서 정형주 후보는 선거운동원 2만명을 모집했다. 다른 후보들이 현안을 살피지 않는 선심성 재계발 공약을 남발할 때 그는 그렇게 지난 10년간 성남 오르막길을 ‘기어 다니며’ 진보정당을 차근차근 뿌리내리고 있었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news.co.kr)

16대 총선지지율
한나라당 김일주 25.2% 민주당 조성준 43.8% 민주노동당 정형주 21.5% 자민련 최인식 6.4%

17대 총선 최근 여론조사 (3/29)
한나라당 신상진 10.5% 열린우리당 이상락 44.7% 민주노동당 정형주 10.4%
민주당 김태식 3.6% 무응답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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