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노련과 해양수산부, 한국항만물류협회 등 항만관련 노사정이 7일 ‘평화선언’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각 언론들은 선언 직후 ‘항만 무쟁의’등의 제목을 부각시키며 임단투 시기를 앞두고 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또 평화선언으로 항만의 국제적 신인도가 향상돼 중국 등으로 떠난 외국선사들이 국내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해양수산부의 ‘바람’일 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높다. 이번 평화선언에 ‘현혹’돼 외국선사들이 국내항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낮고 평소 분규가 거의 없던 항운노련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자체가 ‘무쟁의’ 선언으로는 모순이라는 것이다.

해양수산부의 노조 장악력 과시(?)

현재 외국선사들이 중국 등으로 옮겨가는 이유는 노조의 파업에 따른 불안감 증가 보다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신항만 건설에 따른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사실은 해양수산부도 인정하고 있다.

또 해양수산부는 7일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으로 1조560억원대 이상의 수출입 피해를 입고 외국선사들이 중국 등으로 떠났다고 주장해, ‘선언’이 사실상 화물연대와 운송하역노조 등을 겨냥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거쳐간 해양수산부가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판단속에 ‘선언’을 주도했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민주노동당 지지선언 등에 대해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이 터져나오는 마당에 해수부가 항운노련과 평화선언을 체결함으로써 노조 장악력을 과시하고, 항운노련을 정부와 여당의 지지세력으로 묶어두려는 정치적 포석도 깔려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 부두 노무독점공급권을 쥐고 있는 항운노조는 정부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정부가 노무독점공급권을 인정하지 않고, 조합원들을 하역회사 소속의 상용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노조는 조직적 기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광양신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역회사 소속이 대부분이고 이들 가운데 50%만 항운노조 조합원이다. 2006년 개항하는 부산신항에서도 노동자 10명 가운데 5명만 항운노조 조합원이 된다. 노사정이 신항만 건설과 항만 민영화를 앞두고 지난 96년 ‘노무공급체계 유지 합의’를 그렇게 맺었기 때문이다.

또 노무현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항만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항운노조 죽이기’를 추진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2000년 항만 노사정이 노조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신설부두에서만 노무독점공급권을 불인정하는 한다는 합의를 맺어 현재는 이에 대한 논란이 없지만, 총선 이후 이를 다시 끄집어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항운노련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그래서 항운노조가 다른 노조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해양수산부의 주도 하에 노사정 평화선언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다.

외국선사들 노조회피, “사실과 달라”

평화선언의 실무를 맡은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8일 “평화선언 직후 세계 2위 선사인 스위스 MSC가 부산 감만부두에 정기기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평화선언의 효과는 아닐 수 있지만 선언은 앞으로 다른 외국선사의 국내항 기항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MSC는 지난해 5월 화물연대 파업 이후 부산 감만항의 수심이 얕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나라를 떠났고, 정부는 이후 감만항을 준설해 수심을 깊게 하는 공사를 했고 MSC가 돌아왔다. 이는 화물연대 파업과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을 반증한다. 항운노련 관계자도 “선언을 준비하면서 ‘화물연대 겨냥’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또 “중국 상해 선전항 등이 최신시설을 갖추고 있고 중국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어 환적화물이 한국을 거치지 않고 중국으로 바로 들어가는 추세는 맞지만 우리가 이를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평화선언도 (이런 추세속에서) 우리가 할 수 일을 찾자는 뜻에서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운송하역노조 관계자는 “우리 부두의 저효율 구조와 높은 물류비용이 선적사를 떠나게 하는 한 요인”이라며 “이는 왜곡된 노무공급체계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선언에는 항운노련의 위기감도 한 몫을 했다. 이러한 세계적 화물이동 흐름 속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면 결국 노조의 조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광양과 부산항운노조는 지난달 전남도와 함께 중국 상하이로 가 중국기업들을 대상으로 포트세일즈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최근 정국불안과 관련해 해양수산부의 노조통제적 발상과 항운노련의 조직적 득실판단, 여기에 정부의 관료적 결정권에 크게 의존하는 항만 노사의 구조적 취약성이 평화선언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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