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민주노동당 후보 모두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누가 돼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탄핵 당한 대통령은 문제 아니에요? 만약 권영길 후보가 된다면... 여당견제를 위해 야당이 절반은 넘었으면 좋겠네요.”

5일 새벽녘, 창원에 막 도착해서 처음 만난 택시기사에게 조심스럽게 선거 분위기를 묻자, 한참을 빙빙 돌리더니 역시 조심스럽게 내놓은 대답이다.

ⓒ 매일노동뉴스 연윤정


경남 ‘정치1번지’ 창원을의 당 대표

“요새 부쩍 권영길 후보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 늘었어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사무실이 들어선 창원시 내동 기산파라다이스빌딩 근처의 편의점. 이곳의 아르바이트생은 “서서히 선거분위기가 뜨는 것 같다”고 말했다.

휴일(5일) 아침인데도 선거 사무실은 당직자, 자원봉사자들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각자 할 일을 점검하고 다들 바쁘게 흩어져 버린다. 권영길 후보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단다. 그들 뒤에는 KBS 카메라도 보인다. 요미우리 다음 차례인 것 같다.

“한번도 선두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4년 전과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예요.”

경남의 정치 1번지로 통하는 도청 소재지인 창원. 박정희 대통령 시절 완성된 기계공업공단이 위치한 대표적 노동자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두산중공업, 통일중공업, 로템, LG전자 등 대략 1,000여개 업체가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었던 권 후보는 최고 50.9%(3/21, KBS-미디어리서치)까지 지지를 얻었고, 2위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를 줄곧 20%p 이상으로 따돌렸다. 약사출신 열린우리당 박무용 후보는 2위와 3~4%p가량 뒤쳐져 있다.

“사람들 눈빛이 달라졌어요”

권영길 후보의 하루는 ‘눈코뜰새’ 없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이날의 유세는 문제의 반송동 아파트단지부터 시작했다. 4년 전 여론조사에서 내리 선두를 달리고 출구조사에서조차 1위를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에게 5,150표 차로 쓴잔을 마시게 했던 지역이 바로 중산층이 주로 사는 반송동이었다.

“장사는 잘 되나요? 살림살이가 좀 펴야할 텐데요.”
“열심히 할께요. 이번에 밀어주이소.”

아파트단지 주변상가를 돌며 권 후보는 넉살좋게 일일이 말을 붙인다.

주민들은 대부분 권 후보를 미리 알아보고 밝은 표정으로 맞았다. 가끔 무표정한 이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권 후보가 들르고 간 한 미용실 여성주인은 “다른 정당처럼 부정부패가 없잖아요.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편이예요”라고 전했다. 또 권 후보를 보자 반갑게 악수하며 격려의 말을 건네던 은희영씨(48, 동명중공업)는 “나도 간부급이지만 권 후보에게는 부정적 이미지가 없다”며 “회사내에서도 이번엔 꼭 될 거라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이는 분명히 4년 전과는 다르다. 배무성 수행비서는 “사람들 눈빛이 달라졌어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심해요. 그래서인지 주민들은 권 후보에게 꼭 ‘국회 들어가면 변하지 말라’고 당부하곤 합니다”라고 전했다.

지역 노동운동 탄탄한 조직 지원

권 후보가 선두를 고수하고 주민들의 거부감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권 후보 자신이 4년 동안 지역구에 들인 정성이 일단 작용한 듯 하다. 4년 전 권 후보는 “창원에서 살지도 않았다”며 경쟁후보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권 후보는 1주일에 4일씩, 지난해 8월 이후에는 주 5일을 창원에 머물며 주민과의 접촉을 꾸준히 넓혀왔다.

또 노동자 밀집지역의 활발한 지지·지원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창원지역의 경우 민주노총 사업장 주축으로 지난 2월 ‘경남지역노동자선거운동본부’(노선본)가 구성됐다. 민주노총 경남지역 전현직 간부들이 대거 뛰어들고 있다.

노선본은 정치자금은 물론 현장과 지역사업 등 인적·물적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조합원 1인당 2,000원인 민주노총 총선특별기금은 대략 60%가량 걷힌 상태. 또 과거와는 달리 대중동원이 어려운 만큼 연월차를 써서 일일자원봉사에 나서겠다는 노동자가 250명 이상이나 된다. 또 창원을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격전지인 만큼 노동자실천단을 구성해 지역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사업은, 당원가입운동, 현장정치교육, 정치자금 세액공제 홍보, 현장순회 등을 함께 하고 있다. 이같은 노동계의 지지·지원활동은 비단 창원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원갑, 마산갑, 김해 등지로 이어진다. 창원을 선거사무소에 파견된 사람만 20명 가량 된다고 한다. 또 권영길 후보 선대본부장 28명 중 노동계 출신은 문성현 전 금속산업연맹 위원장 등 10명이다. 선본에서는 창원시의 전체 노동자 수를 9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창원을 선거구의 경우 유권자 15만여명 중 노동자가 1만7,000명 가량에 이를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한나라당 맹추격, 흑색선전 열올려

그러나 막판 복병이 등장했다. 이른바 ‘박근혜 효과’와 ‘한나라당 조직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창원을에서도 맹추격이 시작됐다.

창원의 경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일 다녀가면서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의 지지율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창원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계획된 도시라고 주장하며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개정 선거법 하에서 선거운동이 제한된 상태에서 한나라당의 지역조직력이 막판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주영 후보측에서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총에 대한 비방 등 네거티브 전략을 취하면서 권 후보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이 후보는 지난 5일 방송된 부산방송(PSB) TV 후보초청토론회에서 권 후보가 불법파업 주도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은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있다고 제기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노선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 후보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노동당의 모태인 민주노총이 집회를 이용해 불법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연결지어 함께 공격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권 후보측은 발끈하면서도 네거티브 전략을 정면돌파로 꺽겠다는 입장이다. 선대본 송철원 집행위원장은 “이 후보측이 흑색비방에 나선 것은 그만큼 마지막에 몰렸다는 급박한 심정 때문”이라고 “그들이 원하는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이긴다”

문득 창원에서 처음 만난 택시기사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도 영남권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거부감도 강하지 않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창원 노동계는 빠르게 지지세를 회복하고 있는 한나라당 결집을 저지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에 노선본은 6일 본부장단 회의에 이어 7일 각 조직 전체회의를 열어 현장과 지역에서 바짝 긴장감을 높여 한나라당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고 의지를 모았다. 이와 함께 노선본은 계급투표를 통해 그동안 취약했던 여성과 노동자 가족의 ‘표밭’을 끌어안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취약한 비정규노동자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선거전에 나설 ‘비정규직조직단’도 구성해 비정규직 참정권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추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권영길 후보가 승리할 겁니다. 박근혜 효과와 이주영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은 한계가 있습니다.”(창원을 선대본 관계자)

선대본 관계자라서만은 아니다. 지난 4년간 권영길 후보가 닦아놓은 지지기반은 물론, 이번 선거가 진보정당의 원내진출과 이를 통한 정치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점을 창원 유권자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유세 나가면 분위기가 진짜 달라요. 이번엔 될 거라며 우릴 보고 손을 흔들어주죠.”

“지난 2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어요.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서민이 중심인 당이잖아요. 기쁜 마음으로 오늘 첫 유세에 나왔어요.”

자원봉사자 김경임(25, 창원대 언론정보학과), 김재석(22, 창원대 사회학과)씨가 활짝 웃으며 하는 말이다.

[표1]창원을 최근 여론조사 결과
3월27일 <조선일보-갤럽>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2~4.4%

이주영(한나라당) 19.7% 박무용(열린우리당) 16.5% 권영길(민주노동당) 45.0% 무응답 18.9%

[표2] 창원을 16대 총선 지지율
이주영(한나라당) 43.9% 차정인(민주당) 13.2% 김영성(자민련) 1.78%
심태회(민국당) 2.1% 권영길(민주노동당) 38.5%


연윤정 기자(yon@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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