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틈을 타 시대착오적인 정체불명의 흑색선전이 나돌아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정책과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색깔론이란 반갑지 않은 ‘오랜 손님’의 방문에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아직도 이런 낡은 수법을 쓰는 후보들이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란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색깔론에 기대어 선거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갖가지 ‘억지’과 ‘설’로 뒤덮인 색깔론

지난달 22일 북한 인권운동가로 알려진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48)씨가 창원을 찾았다. 폴러첸씨는 이날 강연에서 “촛불시위가 평양의 대규모 군중퍼레이드와 똑같다”며 북한과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또 방송사들의 보도태도와 관련해서는 “케이비에스(KBS)의 케이(K)가 김정일의 영문 이니셜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까지 말했다.

28일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기독교인 김경래 장로가 창원의 한 교회를 방문해 특별강연을 했다. 그 역시 이번 선거를 북의 지령문대로 움직이는 빨갱이들의 공산정권 수립 기도라고 규정했다. 그의 강연 내용을 자세히 보려면 한국기독신문 3월6일자에 기고한 김 장로 본인의 글을 참고하면 된다.

지난 29일 경남 합천군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는 ‘빨갱이 사위(노무현)가 대한민국에서 뭘 하려 했는가?’는 제목의 흑색선전 유인물이 뿌려졌다. 유인물에 따르면 대통령 부인의 아버지가 6?25때 마산 진전면 인민위원장을 지냈고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의 당숙은 월북했고, 안희정은 주사파고, 김근태 열우당 대표의 친형은 월북해 북한의 요직에 있고, 강금실 장관의 전 남편은 공산주의 이념 서적을 출판했고, 이창동 장관의 아버지는 남로당 간부고,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은 간첩 혐의로 도망 다녔다고 했다.
1위와 3% 차로 혼전중인 나양주 후보의 거제지역에서는 본적이 전북이라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전국농민회가 전략지역으로 분류한 진주을의 김미영 후보에게는 ‘나이도 어린 여자’가 정치를 한다는 게 무리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창원을의 권영길 후보를 놓고서는 노동귀족이다, 재산이 많다, 아들이 유학갔다는 식의 흑색선전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심지어 나이가 많다는 소리도 자주 들을 수 있다.

노동자 밀집지에 색깔론은 역효과만

그러나 이 같은 흑색선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창원을 권영길 후보는 여전히 2위와 두 배 이상 큰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거제 나양주 후보도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중이다. 나 후보는 3강 체제 속에 1위와 불과 3%포인트 차의 2위로 당당하게 나섰다. 창원갑의 최재기 후보도 10.7%로 두 자리 수를 돌파해 계속 상승중이다.

민주노동당 각 후보 선거사무실 관계자들은 이 같은 색깔론에 대해 하나같이 “노동자 밀집지역인 창원에서 색깔론을 편다면 그건 오히려 감표 요인”이라고 말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저질 흑색선전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준비한 각종 정책 공약들에 대한 선전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흑색선전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도 바뀌었다. 이미 경남신문이 폴러첸씨의 특강내용에 강한 유감을 표하는 기자칼럼을 실었다. 경남도민일보는 합천에서 발견된 유인물을 <선거 단골 ‘빨갱이’ 또 고개>라는 제목의 31일자 사회면 톱기사로 다루면서 색깔 공세에 대해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친노’도 ‘반노’도 아닌 ‘민노’

지역 선거 현장은 관 두껑 열고 들어가야 할 50년대 낡은 주장과 80년대 민주 대 반민주, 90년대 보수 대 진보가 혼재된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지금은 반노 대 친노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까지 가세한 현실 정치판에서 ‘민노’라는 선명한 색깔을 국민들 가슴에 아로새길 절호의 기회다. 친노는 진보고, 반노는 보수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안에는 엊그제까지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을 지냈던 후보도 있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다.

50년대, 80년대, 90년대 주장들이 뒤섞인 총선
지금은 ‘반노’ 대 ‘친노’ 대신 ‘민노’라는 선명한 색깔 분명히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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