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DJ 선생님’의 영향력과 ‘반 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호남권은 탄핵정국 이후 민주당이 몰락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애증과 향수가 뒤섞인 상태에서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한나라당을 막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신 비판적 지지’가 주민들 사이에 압도적인 여론을 형성해 가고 있다.

‘예전에는 민주당 노란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보장됐는데 이제는 열린우리당 노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우스개가 당연하게 통할 정도로 열린우리당이 반사 이익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는 게 지역주민들의 말이다.

이 가운데 민주노동당에서 광주 6명, 전남 4명, 전북 5명 등 모두 15명의 후보가 출마해 곳곳에서 주민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으며, 녹색사민당에서도 전남 2명, 전북 1명 등 3명이 출사표를 던져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15명 녹색사민당 3명 출마

민주노동당은 2002년 6.13 지방선거 결과 호남권에서 전국 평균 8.13%의 2배에 가까운 15%대의 정당 지지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광주 14.79%, 전남 14.99%, 전북 12.77%의 의미 있는 정당득표율을 기록한 민주노동당은 이때부터 확실히 호남권에서만큼은 ‘제1야당’으로 통했다. 원내의석수 기준 제1당인 한나라당은 이미 민주노동당의 ‘게임’상대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결과는 민주노동당에게 충격이었다. 지방선거에서 전국 최고 정당지지율을 기록한터라 상당한 선전을 기대했으나, 유권자 100명 가운데 단 1명만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당시 권영길 후보 득표율이 전국 평균 3.9%를 기록했으나 호남권은 이의 1/4수준인 1%대에 머물렀다. 1인2표제로 치러진 지방선거에 비해 대선은 ‘사표심리’가 발동하는 등의 특성이 있어 득표율 하락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호남권처럼 지지율이 양극단으로 요동친 곳은 없었다.

여기서 호남지역민들의 정치성향과 투표성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 문명학 기획조정실장은 “여전히 주민들은 진보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긍정하면서도 실제 투표에서는 한나라당 반대가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다른 지역과 달리 호남지역은 이 같은 전략투표에 훈련이 돼 있다”고 진단한다. 호남지역은 진보정당이 뿌리 내리기 가장 쉬운 토양을 갖춘 ‘기름 진’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척박한 땅인 셈이다.

‘전략투표’ 훈련된 지역

광주?전남지역은 전북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편이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 따르면 1~2곳 정도에서 민주당이 당선 가능권에 근접해 있다. 그만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선두 경쟁이 치열하다. 반대로 민주노동당과 녹색사민당 등 진보정당들의 선거운동도 그만큼 치열하고 힘들다.

광주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비해 이를 대체할 민주노동당의 ‘진보야당론’이 설득력을 얻어가면서 지방선거 때의 정당지지율 15%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은 광주 광산구 국강현, 남구 황광우, 동구 안상연, 북구갑 김용진, 북구을 안영돈, 서구 오병윤 등 모두 6명을 출마시켰다.

광산 국강현 후보는 광주지역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현재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미조직 비정규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어 노조와 사회단체들의 조직적 지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남구 황광우 후보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합에서 활동하는 등 노동운동가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는 인물. 동구의 안상연 후보는 부산에서 학교를 나오고 부산 사상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나 광주에서 출마한 후보로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는 진보정당의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성을 띠며 지역민들의 호감을 얻고 있다. 북구을 안영돈 후보도 현대그룹노조총연합과 현대차노조 출신이다.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윤승현 사무처장은 31일 “탄핵정국 이후 일시적으로 빠졌던 정당과 후보 지지율이 완전히 회복돼 현재는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어 이대로 가면 정당지지율 30% 목표달성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민주노동당 “광주 30%” 자신

전남지역도 광주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민주노동당 전남도당 성인 사무처장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때 2%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에서는 15%의 정당득표를 이뤘다”며 “여수와 광양, 구례 등에서 선전을 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상승분위기를 타고 있어 30% 득표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노동당 전남도당은 우리농산물을 보급하는 등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FTA체결로 시름에 빠진 농민들과 30~40대 여성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어 예상밖의 높은 득표도 예상된다.

녹색사민당 중앙당 관계자도 “여수에서 한영대 법학교수인 장세석 후보의 개혁성과 참신한 이미지가 지역주민들에게 전달되면서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전남 광양·구례 서영완, 목포 최송춘, 순천 김유옥, 여수을 이준상 후보가 표밭을 다지고 있다. 녹색사민당에서는 순천 설동회, 여수갑 장세석 후보가 출마했다.

목포 최송춘 후보는 사회보험노조 중앙운영위원이며, 순천 김유옥 후보는 태성기공노조 출신이다. 여수을 이준상 후보는 여수화력발전노조위원장을 지냈다.

전남, 정당득표 선전 기대

전북에서는 상대적으로 민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을 견제하는 ‘진보야당’으로서 인식되면서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민주노동당은 전북 군산 김홍중, 완주, 임실 하연호, 익산 현주억, 전주덕진 염경석, 전주완산을 이금희 후보가 출마했다. 녹색사민당도 전주완산갑 양재헌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군산 김홍중 후보는 민주노총 군산시협준비위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는 군산시협 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익산 현주억 후보도 전노협 위원장 직대를 지냈고 현재 민주노총 전북본부 지도위원을 맡고 있으면서 지역활동을 오랫동안 해 와서 상당한 득표가 예상된다. 전주덕진 염경석 후보는 사회보험노조 출신으로 초대부터 4대째 계속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을 맡고 있는 ‘지역 명망가’이다. 에이스제과 노조위원장 출신의 전주완산을 이금희 후보는 전노협 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녹색사민당 전주완산갑 양재헌 후보는 개혁국민정당 출신으로 비사벌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박병언 사무처장은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지역민들이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후보가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해도 60%대의 지지를 보내는 등 ‘묻지마 지지’가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확실히 가라앉고 있다”면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율이 6%대로 나오니 실제로는 15%를 가뿐히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북지역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여론조사 결과 평균적으로 약 3~5%대의 후보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전북 “15% 득표 가뿐”

민주노동당은 호남권 득표 목표에 대해 ‘민주당을 확실히 누르고 제1야당 또는 제2당의 지위를 확고히 굳히기’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당원을 늘리는 조직적 과제와 정당득표 제고를 후보전술로 돌파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 달성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민주노동당 문명학 기조실장은 “호남지역은 대공장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공장과 농촌지역이 많은 지역의 특성상 농민조직과 연대,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조직적 지원이 효과적”이라며 “이번 총선에 나선 15명 후보 모두 비중 있고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이어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80년대 민주화의 상징 빛고을 광주.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소산물 FTA협정의 직접 피해자인 농민들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전남과 전북의 ‘4?15 선택’이 어떻게 내려질지 전국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다시 ‘신 비판적 지지’에 사로잡혀 노동자의 정당, 농민의 정당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말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 확실한 지지를 표명해서 단단한 기틀을 마련해 줄지는, 온전히 호남지역민들의 손에 달렸다.

조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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