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구의 제조공장으로 떠오르면서 각국 생산업체들이 저임금을 쫓아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가운데 극심한 실업난을 겪고 있는 미국 노동계가 자국내 기업들의 생산공장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노총인 노동총동맹산업별회의(AFL-CIO)는 지난 16일 미국 통상법 301조를 동원해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부시 행정부에 청원했다.

이번 청원의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이 자국내에서 노동기본권을 탄압함으로써 불공정한 무역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AFL-CIO는 “중국 노동자들이 노조결성권조차 보장받지 못한채 자국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건강과 안전을 보호받지 못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같은 중국의 저임금 구조로 인해 생산단가를 낮추려는 미국의 생산공장들이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실업률이 최악에 달했다는 점이 이번 청원의 근본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잃어버린 280만 일자리와 부시의 딜레마

미국은 부시행정부 집권 이후 최소한 280만개의 생산직 일자리를 잃어버렸으며 한해 1,230억달러에 이르는 대 중국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중국의 저임금에 전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AFL-CIO는 “최소한 중국정부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을 지키도록만 하더라도 생산비용이 평균 44%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AFL-CIO 회계전문가 리차드 드럼카는 “최소한 70만명의 미국노동자들이 중국의 노동기본권 침해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부시행정부가 무역제제를 통해 중국에 강력한 시정을 요청하는 한편 ILO 기준을 준수하도록 중국정부를 WTO에 제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과 미국 무역대표부는 청원이 제기된 45일만인 오는 4월30일까지 이번 청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청원을 받아들일 경우 곧바로 무역제제를 위한 구체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빠진 딜레마는 만약 AFL-CIO의 청원을 거부할 경우 중국이 자국 노동자들을 탄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해 온 미국으로서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결과다.

또한 부시행정부로서는 청원 거부가 중국의 노동탄압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중국 노동탄압이 자국의 실업문제와 결부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미국 실업문제에서 중국 변수를 제외하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업문제가 최대 관심사를 형성하고 있는 대선을 앞두고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결과다.

반면 부시행정부가 이번 청원을 받아들이고 슈퍼 301조를 발동을 통해 중국에 무역제재를 가할 경우 이라크 전쟁에 이어 중국이라는 거대 공룡을 상대로 또다시 국제사회에 커다란 분란을 일으켜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온 상황에서 저임금에 기반한 중국의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오는 4월30일 부시행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주당 공청회서 미국기업의 노동착취 고발

한편 이번 청원과 관련해 30일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개최한 공청회가 열렸으며 증인으로 참석한 콜롬비아대 법학교수 마크 바렌버그는 익명의 기업관리자 말을 인용 “미국 다국적 기업의 중국공장 80%가 중국 노동법조차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바렌버그 교수는 중국 노동침해 연구 전문가로서 지난해 ILO의 지원을 받아 중국 현지에서 다국적 기업의 관리자들을 면접했으며 AFL-CIO의 이번 청원도 그의 연구에 기반한 것이다.

그는 이날 공청회에서 “미국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법에 금지된 초과노동을 시키고 있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2중3중의 장부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미국 신발제조업체의 중국공장 노동자들이 독성물질에 노출돼 있으며 노동자들이 항의할 경우 관리자들은 항의한 노동자를 해고하고 지방으로 돌려보낸다”며 “중국관리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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