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차별 없는 서울’ 대행진에는 서울지역에서 출마한 민주노동당 총선 지역구 후보들은 순례단이 자신들의 지역구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행진에 참가했다가 다른 지역을 넘어가면 해당 후보에게 넘기는 이른바 ‘바톤 터치’ 행렬을 이어갔다. 26일 신촌 이랜드 앞 집회에 참가해, 마포지역 순례에 참가했던 민주노동당 마포을 지역구 정경섭(34) 후보는 행렬 속에서 따라 걷다가 9년 전 자신도 비정규직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꺼낸다.

“95년이었죠. LG엔지니어링이란 건설회사에서 문서배달 업무를 하지만 소속은 EK맨파워 라는 용역회사인 파견노동자로 입사했어요. 신문, 우편물, 팩스, 화물 등이 오면 해당 부서에 갖다 주고 본인 확인이 필요하면 확인 도장도 받고 하는 그런 문서수발 업무였죠.”

당시는 비정규직이란 단어도 생소한 시절. 지금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화되면서 갖가지 관련 용어들을 접하다 보니 자신이 파견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LG 정규직 직원들은 직급도 있고 말단 사원이라도 ‘아무개씨’로 불리지만 EK맨파워 소속 노동자들은 ‘야!’, ‘어이’ 라는 이름도 없는 호칭으로 불리고 반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인간적인 모멸감은 둘째치더라도 월급이 고작 42만원이었다. 그나마 자신은 남자여서 군 경력이 인정이 됐던 것이었지만 여직원들은 39만원을 받았다. 승급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LG쪽이 맨파워에 1인당 인건비로 80만원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노조 결성을 모의했다. 자신에게 돌아올 노동의 대가 가운데 절반을 회사에서 가로챈다는 데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100여명을 모았고 노조 설립 절차도 문의하고 다녔다. 이를 눈치 챈 LG쪽은 계약직 입사를 정 후보에게 제안했다. 자신만 특혜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더니 맨파워에서 해고 의사를 전해왔다. 그냥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저에게는 당시 상황이 커다란 부채로 남아 있어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고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끝까지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무책임하게 동료들을 팽개치고 나와 버렸던 거죠. 국민승리21때 자원활동을 하는 것으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저를 항상 비정규직의 아픔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정치를 하도록 만듭니다.”

총선이 끝나면 정경섭 후보는 지역구에서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가장 중점적으로 해 볼 생각이다. 선거운동차 지역주민을 만나러 상가를 돌아다닐 때 정작 자신이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영세상가에서 일하는 더 영세한 종업원들인데 정말 그 분들은 너무나 바빠서 혹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정 후보에게 눈길조차 주기가 쉽지 않다.

“최저임금 개선 운동을 하면서 그런 분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서명도 받고 할 생각입니다. 서민과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야지요.”
바쁜 총선 일정 속에서도 그는 이렇게 유권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실천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다.
“참, 저 뿐만이 아니죠. 저희 어머님도 비정규직인 간병인이세요. 일산 모병원에서 일하고 계신데 그 때문에 서울대 간병인 아주머니들도 남일 같지 않아요.”

김경란 기자(eggs95@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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