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사민주의 정권들의 기업친화적 정책에 대해 노동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독일 노동계가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맺어온 집권 사민당에 반발, 별도의 독자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후 추이가 주목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 슈뢰더 총리 정책에 반발하는 사민당 좌파들과, 독일 최대의 공공노조(Ver.Di)와 금속노조(IG Metall)가 지난 5일 비공식 모임을 갖고 현 사민당보다 좌파적인 정당의 건설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좌파정당 만들자”

베르디와 금속노조는 각각 조합원 274만명과 264만명을 보유한 독일 최대노조들로서 독일노총 뿐 아니라 유럽 노동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더구나 최근 영국노동당과 노동계의 대립과 함께 독일 노동계의 움직임이 전통적으로 노동계의 지지를 받는 사민당과 재계의 지원을 받아온 우파정당으로 양분돼 온 유럽의 전통적인 정치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구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르디와 금속노조에 최근 유포되고 있는 ‘2006년 총선의 정책적 대안을 위해’라는 전략문서에는 “신당이 동독 지역에서 30%, 전국적으로 20%의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어 신당 창당 움직임이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민당도 독자정당을 창당하려는 세력을 당에서 축출하기로 하는 등 강력한 대처에 나서 이들의 화해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슈뢰더 총리는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라며 “새로운 정당 창당을 위한 요구와 사민당원 자격은 양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구나 슈뢰더총리는 지난 15일 사민당 지도부 회의가 끝난 뒤 총선대책 문건을 유포시키는 등 탈당을 촉구한 당원 6명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기로 했으며 이들 가운데는 금속노조와 베르디의 사무총장이 포함돼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피터 페터 사무총장은 현지 언론을 통해 “나는 사민당 탈당이나 출당을 바라지 않았으나 당이 이를 원할 경우 정치적 영향력을 담을 다른 형식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밝혀 신당창당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카엘 좀머 독일노총 위원장과 위르겐 페터스 금속노조 위원장도 신당창당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사민당 지도부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슈뢰더 내각의 정책 변화만을 촉구하고 있다.

“우경화에 대한 반발”
특히 독일 노동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슈뢰더 총리가 지난 90년대 말 집권한 이후 ‘어젠다 2010’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개혁정책에 대한 강한 반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슈뢰더 총리는 지난해 노령연금 혜택 축소를 뼈대로 한 연금개혁안을 통과시켰으며 연금재원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고 국민연금 충당금을 축소하는 한편, 2004년으로 예정됐던 연금수령액 인상계획도 폐지했다.

또한 노동계는 “슈뢰더 총리가 기업에 대해서 경고와 위협 정도로 그치고, 대신 노동자와 실업자, 연금생활자, 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복지혜택 삭감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해 왔다.

더구나 ‘어젠다 2010’은 노동시장 규제완화를 포함하여 복지분야의 정부지원과 복지혜택 축소 등을 골자로 하고 있어 사민당의 기본 정신을 훼손할 뿐 아니라 시장만능주의의 대처리즘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같은 사회적 반발에 따라 지난달 실시된 함부르크의회 선거에서는 전후 50년 만에 사민당이 참패하고 야당인 기민련이 단독 집권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난 5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도 지금 당장 선거가 실시될 경우 기민당이 49% 지지로 의회 다수당이 되고 사민당이 25% 득표에 그쳐 슈뢰더 총리가 실각하게 될 것이라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독일 전국 라디오 방송은 독일의 가장 큰 노조인 베르디(Ver.Di)와 금속노조(IG Metall)가 이달 초 만나 사민당 좌파로 정당을 만드는 것을 논의했으며 이들이 슈뢰더에게 복지 감소 무효화와 부자들에 대한 세금 증가를 요구하는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금속노조가 지난해 6주간의 파업을 성과없이 마무리하면서 슈뢰더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으며 곧 이은 선거에서 강성지도부가 선출된 것도 금속노조의 독자정당 창당 움직임에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양측의 동반자적 관계가 140년 동안을 유지해 온데다 별로 정당 창당 움직임이 현실화되기보다는 슈뢰더 총리의 정책 전환을 위한 압력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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