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노동기사비평>을 기고하던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이 4?15 총선을 앞두고 부산, 경남지역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앞으로 총선 때까지 이정호 국장은 매주 두 차례 <총선 돋보기>를 통해 영남권 민심읽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창원에서 ‘삼특’(삼미특수강)은 고통이다. 영화쟁이 조성봉 감독의 독립영화 ‘우리들의 사계(四季)’에 나온 것처럼 3년을 싸웠지만 ‘포철의 고용승계 의무가 있다’는 고등법원에서의 승리를 대법원으로까지 이어가지 못했던 삼특 해고자들은 전노협 주력부대였던 마창지역 노동운동에서 견딜 수 없는 아픔이다.

3월10일 오후 5시 창원 동남관리공단 체육관 앞에는 하나 둘 오뎅과 닭꼬치를 파는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아주머니, 어떻게 알고 오셨죠?” “이번에는 권영길씨 되겠대요.”

잠시 후 열릴 ‘2004 총선 승리를 위한 노동자?농민 결의대회’에 맞춰 장사를 시작한 이 아주머니는 그냥 도시서민이 아니다. 그 역시 남편이 삼특 해고자였다고 한다. 되는 집은 문 앞부터 북적인다고, 이날 저녁 옛 동지의 부인이 운영하는 그 포장마차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소주와 오뎅 국물로 늦은 저녁을 대신한 노동자들로 붐볐다.

배달호 열사 추모사업회와 금속노조 동우기계 현장위원회 동지들은 ‘열사정신 계승’과 ‘해고자 복직’이 새겨진 낡고 헤진 투쟁 조끼를 입은 채 대회장을 채웠다.

권영길 대표, “탄핵정국 상관 않겠다”

결의대회에 앞서 영남권 진보벨트의 핵심인 경남지역 민주노동당 7명의 출마자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 대표는 기자들에게 “보수정치권이 총선 전략 차원에서 형성해 놓은 탄핵정국과 상관없이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이 모두 도둑놈인 세상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세비를 전산업 노동자 평균 월급만 받고 나머지는 정책개발비와 노동자, 서민을 위해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나머지 세비 사용 내역도 공개해 시민단체로부터 감사받겠다고 했다. 세비수준을 감안한다면, 노동자 평균 월급이 지난 2002년 기준으로 186만원이니까 월 400~500만원은 내놓아야 할 것이다. 회견장에 나온 어떤 후보는 “그 돈 모아 장애인에게 개인택시를 사주면 1년에 1대는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소환제에 대한 세부 계획도 발표했다. 일정 수 이상의 지역구 유권자가 발의하면 자동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소환여부를 결정하는 국민소환제를 원내에서 입법화하겠다고 했다.

창원갑 출마를 준비해온 손석형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이 사면복권이 안돼 그 빈 자리를 최재기 민주노총 전 조직국장이 메웠다. 사회보험노조 출신이면서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에 파견 나와서 일할 때 곱슬머리에 세수도 안하고 나온 듯 부스스했던 최 동지는 이날 단정한 모습으로 회견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대형 현수막에 나붙은 최 동지의 인물 사진을 보면 가증스러울(?) 정도로 깔끔해졌다.

“나라 돈 도적질하는 보수정치판 갈아엎자”

1,100석의 결의대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노동자들은 늦게까지 새로 입당한 농민들과 밖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역시 사면이 안돼 후보자리를 부인 김미영씨에게 넘겨야 했던 강병기 전농 전 사무총장은 “전농 내부에서 민주노동당 중심의 정치참여에 대한 격론이 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하면서 단번에 잠재워 줬다”고 말했다. 대회장 위에 올라선 함안, 함양, 산청, 거창, 남해, 진주, 의령군 농민회 대표들은 열린우리당이 농민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바로 민주노동당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7명의 경남지역 후보자 대표연설을 한 권영길 후보는 “오늘 오후 내동시장에서 파 한 단을 팔면 200원이 남는 노점상 아주머니도 우리 삼특 해고자였다”며 “나라 돈 도적질하는 보수정치판을 갈아엎자”고 했다.

노동자가 국회를 점령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하는 체육관 옆 화장실에는 ‘축 준공 - 창원공업기지, 1976년 6월12일, 대통령 박정희’라는 낡은 조감도가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 쓴 채 가로놓여 있었다. 30년 전 박정희가 노동자를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위장하면서 만들었던 바로 그 창원공단이 정치세력화 된 노동자의 국회 진입 교두보가 되고 있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꿨다. 그러나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 30년 전 박정희의 낡은 구호를 반복하며 노동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정호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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