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민주당의 탄핵 발의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전국을 또 한 차례 소용돌이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총선 한 달여 앞둔 지금 상황이 1년여 전 대선 정국과 닮은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내내 밀리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으나 정몽준은 선거 전날 밤 돌연 노 후보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노 후보가 위기에 빠지자 오히려 개혁적 성향의 표들이 결집, 노 후보를 당선시킨 바 있다. 탄핵안이 가결되든 부결되든 이 같은 여야대립이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지난 대선과 같은 구도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과 녹색사민당은 지금 탄핵국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민주노동당은 지금 탄핵국면이 이번 총선에서 당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칫 불리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정책과 이념은 사라지고, ‘노무현이냐 아니냐’, 혹은 ‘노무현 지키기’의 구도로 이어지면서 민주노동당은 언론보도나 여론에서 상대적으로 배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여야는 총선전략 속에서 탄핵정국을 활용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 있다”고 “여야대립은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을 부추기고 선거구도를 단순화 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진보 대 보수’의 이념과 각 분야별 정책으로 기존 보수정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야당과 선을 그으면서 쟁점을 형성해나갈 경우 어느 것도 제대로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민주노동당이 국면을 바꾸는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같은 ‘이전투구’ 구도에 발을 담그는 것이 ‘위기극복’을 위한 대안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탄핵정국에 대해 10일 국회 앞에서 긴급집회를 갖고 “탄핵공세를 중단하고 16대 국회를 폐쇄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여야, 노 대통령 모두 총선을 앞두고 정략적으로 탄핵정국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두둔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는 반대로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당 노회찬 선대본부장은 “탄핵국면이 민주노동당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야당이 야당구실을 못하고 열린우리당이 개혁적 성향의 정당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서 민주노동당은 그 자체로서 주목받고 있다”고 현 국면을 설명했다. 이에 노 선대본부장은 “당초 진보 대 보수의 기조를 분명히 하며, 새로운 이슈를 개발하고 과거보다 강력하고 신뢰받을 수 있는 정책선거로 가도록 힘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녹색사민당은 지금 탄핵정국을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노 대통령 탄핵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줄기차게 높여왔다. 녹색사민당은 10일 성명에서는 “탄핵불참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정치개혁 논리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한 기회주의적 행위”라며 야당 소장파 의원들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녹색사민당의 주축인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 “정치권이 혼란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원인은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발언에서 출발한 만큼 정국혼란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면서도 “불법정치자금으로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이때,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정치공세를 가해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속 보이는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녹색사민당의 한 관계자는 “당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정, 정치사회적 갈등조장 등 탄핵사유가 충분하며 탄핵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단 한나라당, 민주당도 의원사퇴하고 노 대통령과 함께 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단 노 대통령 탄핵추진 찬성과 함께 16대 국회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는 녹색사민당이 상대적으로 지금 탄핵정국에서 비껴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세력이 노 대통령 지지세력과 일정정도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면, 녹색사민당은 한국노총과 녹색·사민주의라는 이념에 근거한 또 다른 지지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녹색사민당은 당의 독자적 이념과 정책으로 이번 총선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녹색사민당은 사민주의와 녹색주의에 기반하고, 보수적·반사회적 정권에 대한 심판을 통해 새로운 정치를 제시하는 차별성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윤정 기자(yon@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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