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예상이지만 혹시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미 회사는 무언가 선택을 한 것 같다. 대책위는 더 이상 내 놓을 것이 없다. 내일 회사측이 진전된 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두 사람 다 죽으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

군산 기아특수강 해고자들의 굴뚝 농성사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굴뚝시위는 9일 현재 농성 125일, 단식은 16일째를 맞고 있다. 노조활동과 관련해 91년과 94년 각각 해고 된 바 있는 이재현(44), 조성옥(42)씨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이 회사 50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 시위를 벌여왔다.

농성 125일째 9일, 군산 기아특수강 해고자 전북대책위와 이승휘 기아특수강 사장간에 극적인 대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날 양측은 타협점 없이 10일 오후 다시 회의를 갖기로 해, 10일 이뤄질 양측 회의결과가 이번 사태의 최대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단식 16일째, 해고자 장기농성 사태 진전 없어

굴뚝농성 시위는 해고자들의 단식이 16일째에 접어들면서 점차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5일 전북대책위가 내놓은 '재입사' 형식의 복직 수정안도 아직까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대책위가 원직복직 대신 '재입사'라는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회사측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고자들은 지난 달 23일부터 음식물마저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9일 대책위와 이승휘 기아특수강 사장간의 면담은, 이날 오후 전북대책위가 개최한 집회 도중 전격 이뤄졌다. 이날 집회가 회사 진입을 둘러싼 양측의 충돌로 순식간에 폭력사태로 비화되자, 회사측은 오후 5시경 사태 수습을 위해 대책위의 면담을 전격 수용해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타협점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정치권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민주노동당 전북지역 총선후보인 염경석(전주덕진), 이금희(전주완산), 현주억(익산), 김홍중(군산), 하연호(완주임실) 후보들은 이날 집회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북 정치권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기도 했다.

"사태 이 지경 이르도록 정치권 뭐했나"

이들은 회견문에서 "올라가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어 보이는 저 굴뚝에서 겨울을 보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전북지역 정치권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규탄했다.

단식 16일째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서 이날 집회장의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북민중연대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세우 목사는 연대사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멀리서 바라볼 뿐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해고자를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이제 회사는 결단을 내려라"고 말했다.

신동진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장관이나 대통령한테까지 건의해 보고 양보안도 제시해 보는 등 해볼 것은 다해봤다"며 "이미 몸이 극도로 안 좋은 상태에서, 그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 어떤 돌출행동이 나올지 모른다"고 위기감을 전했다. 노동자들은 "정상인도 아파트 옥상에 오르면 살이 떨리는데, 하물며 50미터 높이 굴뚝에서 125일 동안 땅 한번 안 밟아 봤다면 어쩌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해고자 언제 돌출행동 나올지 몰라"

김홍중 전북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이날 협상 결과에 대해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해고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말로 면담 분위기를 전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전제 하에 내일 대책위와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면서 "회사측이 오늘 두 해고자를 반 죽였다. 이제 반 목숨만 남았다"고 말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이어 "이제 비상대책위도 두 사람을 살릴 힘이 없다"며 "목요일 다시 집회하자. 다시 깃발을 들고 이 자리에 올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북대책위는 이날 즉석에서 11일 집회를 결정하는 등 앞으로 투쟁강도를 높여가기로 했다. 단식 16일째를 맞고 있는 이번 사태는 점차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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