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오늘은 또 어디서 분신,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릴까’ 조마조마했던 지난해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지난 14일 오전 5시께, 현대중공업 4,5도크 뒤에서 이 회사 협력업체 인터기업 전 노동자 박일수(50)씨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살했다.
그가 벗어놓은 점퍼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A4용지 3장짜리 유서에서 그는 “직영노조 단체협약을 보면 백가지도 넘는 복지혜택, 문화의료혜택, 주거혜택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는 정해진 시급, 일급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하청노동자는 콘테이너 박스에서 옷을 갈아입고 한겨울 점심시간 쉴 곳이 없어 바람피할 곳을 찾아 헤맨다.

직영노동자는 시설 잘 되어있는 건물내부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쓰면서 “그동안 처우개선과 차별경영 개선을 요구했으나 문제 개선에 접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근 현대자동차 울산3공장 하청업체 경일기업 노동자들이 “조반장들이 작업 중에 화장실 가는 것에도 욕설을 퍼붓는 등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격모독에 시달렸다”며 작업을 거부(2월3일)한 지 열흘만의 일이다. 이들은 “설사병이 걸렸지만 조퇴도 허락되지 않아 일을 하다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자 ‘너는 항상 왜 그러냐’며 오히려 질책을 받았고, 출근길에 6중 추돌사고가 나서 전화했더니 어디 다쳤냐는 말도 없이 빨리 들어오라며 언성만 높였다”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폭로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11일 취임한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15일 오전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울산에서 어제 새벽 비정규직 근로자가 분신하는 사건이 있었다.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55% 가량 되는데 대책은 뭐냐”는 사회자 질문에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33% 가량”이라며 분신까지 감행한 비정규직의 아픔보다는 자칫 또다시 숫자(통계)논란을 재연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정부가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고 축소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사회협약이 체결(8일)됐고, 민주노총(3일)과 노동부(11일)의 새로운 수장이 취임한 가운데 비정규직 문제가 노-정, 노-사 관계의 핵심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이번 주는 고 박일수씨와 산재요양 중에 자살한 현대중공업 노동자 고 유석상씨 죽음 등 올 들어 벌써 4명의 산재사망자 발생해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각종 노동탄압에 맞서는 노동계 투쟁이 울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신임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16일 한국노총(오전 10시), 민주노총(오전 11시), 한국경총(오후 1시)을 잇따라 방문, 노동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8일 정부, 재계와 일자리 관련 사회협약을 체결한 한국노총은 15일 조합원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대회를 갖는 등 협약사항 이행을 촉구하면서 사회협약이 일각의 우려처럼 노동자들의 임금자제 등 희생만 강요하는 빌미가 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3일 새 집행부가 들어서자마자 일자리 사회협약에서부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하청노동자의 분신과 산재요양 중이던 정규직 노동자 자살 등 잇딴 사건으로 분주한 움직임이다.
아직 내부 조직체계 개편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민주노총은 15일 회의를 갖고 분신, 자살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16일 신임 김대환 장관과의 만남에서 어떤 요구안을 낼지 고심이다.


이정희 편집부장
goforit@labornews.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