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 추위 속 예순 넘은 농성자들
법사위, “소관 상임위 아니다” 모르쇠 일관

“2000년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내 아들을 이 가슴이 아닌 땅속에 편히 묻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91년 5월 아들을 가슴에 묻은 고 박창수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 모친인 김정자씨는 의문사법 개정안 처리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지난달 28일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유가족 대책위(이하 의문사대책위)는 또 다시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4일로 벌써 8일째다. 지난달 8일 잠시 중단했던 ‘의문사법 개정 촉구 노숙농성’을 이번 달 2일부터 개회한 임시국회 일정에 맞춰 재개한 것.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 한 귀퉁이에 위치한 농성장. 얇은 비닐 한 겹과 조개탄 난로에 의지해 영하 10도의 추위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는 이들. 지난 3일 찾은 농성장에는 고 허원근 일병 부친인 허영춘(의문사대책위원장)씨 등 예순의 나이를 훌쩍 넘긴 유가족들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4차 의문사법 개정안 표류
의문사위가 출범하던 2000년 10월, 그 때만 해도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지만, 현실은 모질기만 했다. 의문사위는 이후 3차례의 의문사법 개정으로 오는 6월말까지 조사기간을 간신히 연장해왔으나, 이번에 4차 의문사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조차 정해지지 못한 채 아직까지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의문사법 개정안은 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법 적용범위를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죽음'에서 '부당한 공권력의 직ㆍ간접적인 행사로 인한 사망'으로 확대하며 조사기간 제한규정 폐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 국회 법사위는 의문사위 예산이 행정자치위 소관인 만큼 자신이 소관 상임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법안을 국회의장에게 반려했어요. 이어 같은 달 26일 이 법안은 다시 법사위에 회부됐으나 31일 같은 이유로 반려돼 지금까지 상임위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농성장을 함께 지키고 있는 의문사대책위 김학철 간사의 말이다.
결국 국회가 법안 처리에 대한 핑퐁게임처럼 책임을 왔다갔다 미루는 동안 피멍만 드는 것은 유가족들의 가슴뿐이었던 것이다.

“내 아들 편안히 눈 감았으면…”
포항에서 올라온 71살의 임분희 할머니는 의문사대책위 농성이 있을 때마다 상경해 유가족협의회에서 마련한 열악한 잠자리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을 마다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농성장을 오가는 손님들에게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냐”며 하루에도 수십번 군에서 죽은 당신의 아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임 할머니는 “이번 의문사법 개정안 처리가 반드시 진행되어야 에미 몫을 다하지 않겠냐”며 “에미보다 먼저 떠난 아들 생각만으로도 원통한데 죽은 이유도 모르고 눈을 감을 순 없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4차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 현재 의문사위가 조사 중인 47건의 사건도 오는 6월로 중단 위기에 처하게 된다. 자식이 편안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바람은 정말 요원한 것일까.
“의문사 사건들은 국가공권력이 자행하고 은폐하였다는 의혹이 있는 사건들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50여명의 조사관이 단기간에 진상규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봐요.
더 이상 유가족들의 가슴에 피멍들게 해선 안 됩니다.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만약 법안 처리가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않은 16대 국회의원 낙천낙선운동을 벌이는 등 의문사진상규명을 꼭 이뤄낼 것입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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