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은 지난 27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 제언’을 언론에 발표하며 임금 동결과 법인세 삭감, 근로자파견제 확대, 임금피크제 도입, 출자총액 제한제도 폐지, 비정규직 확대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러한 경총의 주장은 97년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이 기업에게 요구한 개혁조치들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떨어트리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 등 노동계의 입장에서 실로 경악스럽기조차 하다.

결국 '일자리 만들기’란 대국민 명분을 내세워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실질적으로 삭감하고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욱 더 확대하여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며 기업의 실리는 챙기자는 후안무치(厚顔無?)한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온 국민이 염원하는 재벌 개혁의 단초인 출자총액 제한제도 등 최소한의 기업 규제마저 정경유착과 문어발식 기업확장으로 온 나라가 국치를 겪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발상이다.
학교졸업이 바로 실업자로의 진입이 되어 일할 능력이 있고 일을 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실업자들에게 먹고 살기 위한 일자리 창출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이에, 노사정이 힘을 모아 국가적 과제인 일자리 만들기를 통해 실업 해소와 국가 경제 부흥의 동기 부여를 하겠다는 순수한 취지에 우리 노동계는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런데 재계의 이런 이익 챙기기를 보면서 과연 재계가 진정으로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다.
일자리 문제가 대두하게 된 원인은 고용 없는 성장이며 나아가 성장은 있으나 분배는 없는 경영의 기형성에 있다. 기업의 수익성은 크게 증가하고 성장하고 있는데 비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 상승은 이에 미치지 못해 노동자들의 삶은 날로 나빠지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재계가 일자리 창출이란 미명 아래 노동자에게만 희생만을 강요하는 친자본 반노동 정책을 올해에도 계속 주장한다면 노사갈등과 사회갈등이 더욱 격렬해질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하다.
경제가 침체되고 투자가 위축되면서 고용 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내수경기의 침체가 큰 원인이다. 이는 늘어나는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증가, 380만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로 대변되는 취약계층이 늘면서 구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구조조정과정에서 기술혁신과 설비투자는 하지 않고 노동시장유연화라는 미명아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노동자를 대거 양산한 것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재계가 진정으로 일자리 문제를 우려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고용없는 성장정책으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정규직화에 이제라도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서 일자리 만들기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재계는 임금 동결이라는 이기적인 발상을 하기에 앞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보장하여 기업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겸허한 자기 선언도 실천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국가신인도를 하락시킬 뿐만 아니라 정치를 부패시키고 혼탁하게 만드는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단절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에 당부한다. 일자리는 단순히 많이 만들어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한 공공 취로사업의 실상이 단적인 예이다. 일자리의 질과 취업자의 만족도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양적인 일자리수 늘리기 보다는 양질의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자리 창출에 지혜를 짜내야 한다.

노동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구직난과 구인난이 공존하는 작금의 인력 수급 미스매치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과, 필요한 일자리에 제대로 된 인력을 제때에 공급될 수 있는 고용 시스템의 재점검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취업을 꺼리는 이른바 3D사업장의 노동환경 개선작업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실직자에 대해 재취업에 필요한 교육을 강화하고 구직자와 구인자를 위한 쌍방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자리 만들기'는 온 나라의 문제이며 전 국민의 관심사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기와 사회안전망 확충, 중소 제조부문 지원, 주5일제 조기 정착 및 교대 근무제 변경, 비정규직의 임금·복지 차별 해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 해소를 위해 지혜를 발휘, 재계의 이익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가 아닌, 국민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로 가기 위한 명확한 정책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와 재계에서 주장하듯이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가 성장하여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사관계 안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의 발상대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시키고 비정규직노동자의 규모만 늘린다면 노동자들의 저항만 불러일으켜 노사관계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아야 한다.

김성태(한국노총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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