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 1단계 외환자유화 조처 이후 정부가 추진해온 외환.자본자유화 정책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환상을 좇아 외환,자본자유화를 다그칠지, 아니면 ‘거시경제 안정을 위한 숨고르기’를 위해 적절한 자본관리기법(capital management techniques)들을 채택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월15일 환투기 방지를 위해 역외 선물환(NDF) 시장에서 비거주자(외국인)의 원-달러 선물환 매매를 규제하는 조처를 취했다.
홍콩, 싱가포르, 뉴욕, 런던 등 주요 국제 금융센터에서 비거주자의 원-달러 선물환 매도를 규제하는 내용이다. 선물환은 미래의 일정 시점에서 사고 팔 외환의 가격이 현 시점에서 미리 약정된 금융상품이다.
비거주자와 거주자가 선물환 매매를 할 경우 비거주자가 선물환을 매도하면 거주자는 선물환을 사들이고 현물환시장에서 달러를 팔게 된다. 환위험을 없애기 위해 균형을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현물환시장에서는 달러 공급이 많아지게 되고 원-달러 환율은 하락한다. 원화 가치가 달러에 비해 평가절상 되는 것이다.

결국, 재정경제부의 NDF 직접규제는 이런 연결고리를 끊어 원-달러 환율을 달러당 1,170~1,180원선에서 안정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조처는 정부의 일상적인 시장 개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그동안 극도로 꺼려온 일종의 ‘자본통제’를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뿌리는 달러화 약세를 배경으로 지난해 9월20일 열린 선진 7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시작된다.
“더 많은 환율의 유연성”을 촉구한 이 회담의 공동성명은 ‘달러 가치 하락의 용인’으로 풀이됐다. 그 뒤 일본 엔화의 급락과 함께, 원-달러 환율도 1,170원대에서 1,140원대로 30원 가량이 삽시간에 떨어졌다. 당시 비거주자들은 NDF 시장에서 하루 10억 달러 이상의 선물환을 팔아치웠다.
원화가 평가절상 될 것이라는 예상 아래 환차익을 노린 매매행위였다.
그때부터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난해 전체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순유입액 135억2,000만 달러의 95%가 3분기(58억3,000만 달러)와 4분기(70억3,000만 달러)에 집중적으로 흘러들었다.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입은 주가 상승으로 나타났고,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보유 비중은 40.5%(1,207억8,000만 달러)로 1년 전의 36.1%(787억5,000만 달러)보다 4.4%포인트 상승했다.

정부는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NDF 시장에서 비거주자가 매도하는 선물환을 매입했다. 이렇게 사들인 정부 보유 선물환 규모는 100억 달러를 웃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환율 방어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시장개입에 따라 풀린 통화를 환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은 지난해 한 해 동안 21조2,000억원어치로 2002년 5조2,000억원의 4배에 이르렀다.

통안증권 이자만으로 5조원을 물었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재원으로 쓰이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액도 지난해 한 해 동안 12조8,000억원이 순발행됐다. 올해 발행액은 7조8,000억원인데, 이미 2조원 어치가 발행된 상태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이자만도 연간 1조5,000억원에 이른다. 통안증권 및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이자를 더한 6~7조원이 환율 방어를 위한 직접비용인 셈이다.

정부의 엄청난 시장 개입과 함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늘어났다. 1,6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고는 지난해 한 해 동안 339억4,000만 달러가 늘어났다. 지난해 1~12월 증가한 경상수지 흑자 125억 달러(추정치), 순유입된 외국인증권투자자금 135억2,000만 달러를 더하면 260억2,000만 달러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통해 이 돈의 대부분이 외환보유고로 쌓였다. 차액인 79억2,000만 달러(339억4,000만 달러~260억2,000만 달러)는 외환보유액 운용수익과 유로화 평가절상에 따른 평가차익으로 이뤄져 있다.
정부의 1.15 NDF 직접규제가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2월6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이 넘어야 할 산이다. 이 회담에서는 달러화 약세를 둘러싼 공방은 치열하겠지만, 달러화 가치에 대한 미국의 ‘방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원화 환율 방어를 위한 대응은 NDF 직접규제를 넘어 좀 더 정치하고 포괄적인 추가 자본관리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핵심은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유입에 대한 규제이다. 이는 일부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이 한국에 권고해온 사항이기도 하다.

지난해 연초까지만 해도 정부는 비거주자가 무제한으로 원화를 빌릴 수 있게 하는 것을 포함하는 3단계 외환자유화 일정을 애초 2011년에서 2007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밝혀왔다. 그런 ‘만용의 노선’이 바뀔지 눈여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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