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이 소주 4잔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목으로 털어 넣은 소주는 이미 주량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푹 자고 싶다.” 임기를 마치고 뭘 가장 하고 싶냐는 데 대한 답이었다.

87년 동아건설 창동공장 노조 초대 위원장에서부터 올해까지 햇수로 18년간 긴장과 책임감에서 한시도 벗어날 틈이 없었을 터였다.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했다가 나흘간의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편하게’ 가진 술자리에서 지난 민주노조운동 기간 동안의 소회와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출근이 이제 이틀 남았지만 아직 결재할 게 많아 막판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다”던 그는 솔직한 느낌을 묻자 “홀가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퇴임 직전인 지난 한해를 잊을 수 없다. 너무도 큰 충격과 아픔,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솔직히 두렵기까지 했다. 박창수, 김주익 등의 죽음도 힘들었지만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비정규 차별철폐를 외쳤던 고 이용석 동지의 분신이었다. 그날(2003년 10월26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나도 그 대회장에 있었는데, 너무도 내가, 우리가 무기력한 느낌이었다.”

그는 “2년여동안 끊었던 담배 생각에 안절부절할 정도였다”며 그 때 심경을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 같은 그의 눈도 함께 촉촉해졌다.

“후회스런 일 많다. 특히 감옥에 있을 동안 발생했던 2002년 4.2 발전파업 사태 이후 혼란한 조직상황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상태에서 임기를 마치게 됐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제도개선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노사관계 뿐 아니라 고용, 임금, 사회복지 등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책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연구원 설립과 조합원들 안정적 교육이 가능한 교육원 설립 등을 해서 차기 집행부가 보다 안정적인 체제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닦고 싶었는데 그걸 못해서 많이 아쉽다”고 했다.

“제가 이렇게 단상에 서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게 마지막일 것”이라던 지난달 16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때 발언처럼 그를 노조운동 최일선에서 만나기는 이제 어려울 것 같다. 공식 일정은 3일 있을 이?취임식이 마지막이다. 당분간 “이 사람이 없었다면 노동운동가 단병호도 없었을 것“이라며 ‘지극한’ 고마움을 표시했던 부인 이선애씨와 여행을 가는 일정 이외에 아직 잡힌 일정은 없단다.

“사회공공성 확대를 중심으로 한 투쟁과제를 중심에 놓아야 하며, 비정규직 문제를 전 조직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이 같은 새로운 투쟁의제와 새로운 주체 형성이 이뤄졌을 때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대중조직(민주노총)의 역할 등이 고민될 수 있을 것”이라던 본지 인터뷰(2003년 11월3일자) 때의 발언 등에서 미뤄볼 때 그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중심에 둔 앞으로의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 같다. 쉰여섯인 그는 아직 젊다.

이수호 신임 위원장은 3일 취임식과 함께 공식 일정을 시작한다. 취임 첫 주인 5일에는 우리 사회 최대 화두가 돼 있는 일자리 관련 사회협약 초안이 마련될 예정이고, 김진표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12일까지 사회협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전히 민주노총은 사회협약을 추진하고 있는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노사정위 틀이 변하지 않는 이상 즉각적인 참여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신임 집행부는 출범과 함께 ‘일자리’ 문제에 맞부닥친 셈이다.

이 신임 위원장은 1월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필요하면 정규직도 일자리를 나누는 등 비정규직 지원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사무총국 인선문제에서부터 4.15 총선과 함께 ‘일자리’에 관해 민주노총이 어떤 대응방안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정희 편집부장
goforit@labornews.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