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동계의 최대 현안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 효율화란 명목으로 기업들이 마구잡이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늘리면서 고용시장에서 불안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 공공기관까지 불법으로 비정규직고용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본보에서는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비정규직의 실태와 문제점,대책 등을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정규직을 법정 수준보다 줄이면서 비정규직을 무리하게 늘리고,비정규직을 장기고용하면서도 단기계약하는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미는 등 비정규직 고용과정에서의 탈법과 불법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법적으로 파견근로가 금지된 의료직에까지 예산절감을 이유로 파견근로자를 채용하는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임금과 근로조건에서도 민간기업보다 더 심각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본보 취재팀이 5일 단독 입수한 노동부 국세청 경기도 등 정부기관과 지자체,정부출자 공기업 등 3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8월부터 조사한 ‘비정규직 고용 및 처우 실태 조사보고서’에서 밝혀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5만7415명으로 전체 근로자 14만4927명의 28.4%를 차지했다. 이들 기관은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 채용을 대폭 늘려온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산업재해의료관리원의 경우 내부 규정상 정규직 정원이 1733명이고 비정규직 정원은 90명이지만 지난달 말 현재 근무인원은 정규직 1655명으로 정원보다 적은 대신 비정규직은 153명으로 규정보다 오히려 많은 기형적인 고용행태를 보였다.

특히 근로자의 권익 보호와 비정규직 차별문제 해결을 주업무로 하는 노동부조차 전체 인원의 47.3%를 비정규직으로 채웠으며 인천국제공항공사(86.9%),서울대(54.5%),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41.4%) 등도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 부가조사’를 토대로 집계한 공공행정부문의 비정규직 비율(20.4%)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울시 산하 서울대공원의 경우 정규직은 월 250만원을 받는 반면 같은 일을 하는 용역직과 일용직은 각각 110만원과 92만원을 받는 것으로 드러나는 등 대부분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과 심각한 임금차별을 받고 있다.

또 일용직과 민간 위탁업체에 소속된 근로자 등 하위 비정규직은 대부분 3∼6개월씩 초단기 계약을 반복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심지어 1개월 단위 근로계약을 2년 8개월 동안 반복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국세청의 경우 전·현직 직원 모임인 세우회가 본청과 지방청에 근무하는 전화교환원을 독점공급하는 인력장사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을 계속 늘리고 있지만 실제로 예산 절감이나 경영 효율 향상이 이뤄진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무조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주먹구구식 발상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일하고도 임금은 절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난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공기업의 무차별적인 비정규직 고용 실태와 차별 대우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영 효율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단지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는 정부의 지침만을 쫒다가 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차별 비정규직 양산

상당수 공공기관들은 정규직을 법정 수준 이하로 줄이면서 비정규직 수를 무리하게 늘리거나 비정규직을 장기 고용하면서도 단기 계약하는 것처럼 허위로 서류만 꾸미기도 했다.
또 두 차례 이상 고용을 연장할 수 없도록 규정된 법을 어겨가며 수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계속 고용한 기관도 많았다. 서울대병원의 계약직 간호보조원은 7년 동안 근무하면서 무려 14번이나 고용계약을 갱신했으며 보훈병원에서 운전,경비,세탁,취사 직종을 담당하는 일용직들은 3개월마다 계약을 새로 하고 있다.

조폐공사에서는 협력직 노동자가 1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하면서 2년8개월 이상 일해온 경우도 있었다. 한 근로자를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없도록 규정된 법 조항도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경기도는 일시 사역 인부를 300일 이상 고용하면서 ‘어떤 명분으로든 일시 사역 인부를 상시 고용할 수 없다’는 행자부의 예산 편성 기준에 맞추기 위해 근로기간을 3개월,6개월 단위로 일부러 나눈 뒤 서류만 거짓으로 꾸며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편법,불법 고용도 난무

평택시는 직영사업을 민간 위탁으로 바꾸면 오히려 적자경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무시한 채 정규직 근로자 55명을 해고하고 이들을 민간업체에 위탁,파견근로 형식으로 고용했다.

평택시는 이 과정에서 조례도 제정하지 않는 등 필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시는 특히 민간 위탁 업체를 시청 기능직 공무원에게 맡기는 특혜를 주기도 했다. 결국 평택시는 지난해 11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해고한 근로자 55명을 복직시키라는 판정을 받았다.

국세청도 1999년 9월 직원 400명을 해고한 뒤 이들을 전·현직 세무공무원 상조회인 세우회가 비정규직으로 국세청에 파견하는 형식으로 재고용했다. 세우회는 2001년 말까지 2년 동안 근로자 파견에 따르는 수수료 등 3억원 가량의 수입을 올렸다. 파견근로자들이 받아야 할 돈 가운데 일부를 세우회가 챙긴 셈이다.

서울대병원 분당분원은 간병인 외에 파견법상 아예 파견이 금지된 의료기사나 간호조무사 등 전문적인 의료 인력의 상당수를 파견근로자로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병원은 유니에스,제니웰 등 파견 업체를 통해 전체 의료 직원의 30%에 해당하는 90여명을 불법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은 절반 이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데도 정규직과 단순 노무직(상용직),일용직,공공근로 등 계약 형태에 따라 임금 및 노동조건,사회보험 가입 등에서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었다.
경기도의 경우 환경미화원은 월 252만원을 받지만 단순 노무원은 월 112만원,일용직은 77만원,공공근로는 57만원을 받고 있어 고용 형태에 따라 월평균 임금이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은 “공공기관이 정규 예산에 비정규직 인건비를 포함시키지 않고 각 부서가 부서 사업비로 비정규직을 고용해 운영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노동3권은 물론 최저 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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