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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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신문의 칼럼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공격하면서 우군을 결집”시킨다는 측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천하대란(?亂)을 통한 천하대치(?治)’를 이루기 위해 홍위병을 동원했던 마오쩌둥을 닮았다고 했다.

그럴 듯하지만 틀렸다. ‘쌈마이’(3류 또는 싸구려) 대통령 주변에 결집된 우군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부 맹목적인 노사모 잔당만이 있을 뿐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참여연대가 꼽은 바꿔야 할 관료 1순위였다. 그런데 대통령 생각은 이와 전혀 다르다고 한다. 김 부총리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는 것이다. 왜 결집된 우군이 별로 없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리라. 먼 길을 에둘렀다. 재정경제부 주도로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한국투자공사(KIC)를 말하기 위함이다.

지난 11일 대통령 주재의 국정과제 회의에서 자산운용업 육성과 KIC 설립을 뼈대로 하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이 확정됐다. 2005년까지 자본금 2,000억원, 투자자산 200억달러 규모로 KIC를 출범시키되, 국민연금 등 공공기금을 위탁받아 1,000억달러 이상으로 투자자산을 불린다는 게 핵심이다.

초기 200억달러는 현재 한국은행이 운용하는 외환보유액 1,503억4,000만달러(11월말 기준)를 헐어 마련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밖에 추진전략에 포함된 주택저당채권(MBS) 발행을 통한 국내 채권시장 육성, 동아시아 구조조정 시장 진출, 아시아 역내 채권 시장 주도 등은 굳이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구호를 내걸지 않더라도 해야 할 사안들이고 이미 진행 중이기도 하다.

당연히 한은은 반발한다. 무엇보다 유일한 외환보유액 운용주체라는 한은의 위상이 KIC 설립에 따라 ‘여럿 중 하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지난 3일에는 외환보유액 관리,운영에 관한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뿌렸을 정도다.
외환보유액의 84%는 한은 소유, 16%(243억달러)는 정부 소유라거나, 중?장기 정부채, 정부기관채, 국제기구채, 금융채, 자산담보부증권(ABS), 주택저당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고 회사채나 신용연계증권(CLN)이나 국제 신용파생상품거래의 35% 가량을 차지하는 크레딧디폴트스왑(CDS) 등 위험도가 높은 신용파생상품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공개했다. 대외비로 분류되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이 6%를 웃돈다는 것까지 밝혔다.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을 둘러싸고도 재경부와 한은의 이견은 팽팽하다. 재경부는 3개월치 경상수입에다 1년 미만 단기외채, 유사시 외국인주식투자자금 유출액 등을 감안해 1,211억달러 정도를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는 반면, 한은은 통일 등에 대비해 3,000억달러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은은 “미국 등 선진국이 최근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이 과다하다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환율 절상을 유도하기 위해 해당국의 환율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핵심을 찌르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정작 KIC 설립을 둘러싼 중요한 논점은 여기에 있지 않다. KIC 설립은, 재경부 말마따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설정한 ‘외자 유출 억제, 유입 촉진’이란 정책기조가 낳은 폐해를 역으로 ‘자유로운 외자 유,출입’으로 바꾸는 데 있다. 올 10월말까지 경상수지 흑자는 73억9,000만달러, 순유입된 외국인증권투자자금은 117억달러로 모두 191억달러에 이른다.

올 들어 10월 말까지 증가한 외환보유액 220억달러의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눌어난 것이다. 나머지 30억달러 가량은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으로 바도 무방하다.

엄청난 외국인증권투자자금 순유입액은 환율 하락(원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은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들인다. 달러 매입에 따른 원화 방출로 인해 시중 통화량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은은 다시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2000년 말 66조4,000억원 수준이던 통안채(통화안정증권법에 의해 발행되는 금융채) 발행잔액은 올해 10월말 105조3,000억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지급한 통안증권 이자만도 18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해선 가변예치의무금제(VDR)의 도입이 필요하다. 국내로 유입되는 단기자본은 무이자나 저리로 일정기간 동안 한은에 예치하게 하는 것이다. 단기차익을 노린 외국인증권투자자금 유입액을 줄이기 위해서다.

실제로 타이 중앙은행은 지난 10월14일 만기 6개월 미만의 비거주자 예금들에 대해서는 이자를 주지 않는 조처를 취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KIC 설립 방안이 재경부가 그럴 듯하게 포장해 대통령 앞에 내놓은 내년 총선용 ‘밥상’으로 본다. 아마도 가시적 성과를 내놓으라는 노짱의 독촉에 시달려온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일부 인사들은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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