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레지던트들로 구성된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지난달 23일 ‘의사노조의 방향성과 당위성’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는 등 노조 결성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현재 대전협 집행부의 경우 노조 결성을 공약으로 내거는 등 과거 어느 집행부보다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의료,병원의 개혁 및 공공성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자칫 그동안 보여 온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전협은 수가인상, 포괄수가제 문제 등에서 노조, 시민사회단체 등과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병원 노조들의 파업을 '환자를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로 보는 등 보수언론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동권 대전협 회장(서울백병원 안과 레지던트)을 만나 전공의들의 노조 결성 추진 이유와 이후 계획, 노조 결성시의 활동 방향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왜 전공의들에게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전공의들이 가지고 있는 노동자, 피교육자,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00년 의사들의 진료거부 투쟁 이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전공의들은 심하게는 하루 18시간 근무, 일주일 중 반나절만 휴무,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당직실 등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 환자의 생명을 다뤄야 한다. 지금까지 전공의들은 이런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좀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전공의 과정이 끝난 뒤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예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의사들이 희소성의 가치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도제시스템 아래서는 실질적인 배움의 기회가 되고 있지만 많은 것들이 무시되고 있다. 의사집단은 군대처럼 보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적인 부분도 많이 간과되고 있다. 병원들의 값싼 노동력으로만 이용되고 제대로 된 배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들의 전문가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심한 경우 응급실에 일하는 여선생이 간호사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전문가성의 상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과 직결된 문제이다. 의료보건에 대한 플랜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젊은 조직이 필요한 것이고 노조를 생각한 것이다.”

* 기존 노동계 활동방식 부담

- 노조를 만드는데 어려움은 뭔가?
“사실 노조의 사회적 이미지가 좋지 않다.
의사들 내부에서는 기존의 병원노조가 환자들을 도외시하고 임금인상만을 위한 조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대전협 내에서도 ‘노조 = 파업 = 임금인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우리는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원래 취지를 기본으로 삼아서 노조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전협은 다른 조직과 달리 한시적이다. 전공의 과정을 끝내면 개원을 하게 되고 경영주의 입장의 취하게 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 회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지난해 설문조사결과 85%가 (노조 결성에) 찬성했다. 반대하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 노조가 생길 경우 대전협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협회 전체가 단일업종노조로 전환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이다. 노조 결성에 대한 찬성률이 높지만 구체적인 상에 대해서는 입장 차가 크다. 대전협과 노조가 병존할 수도 있다.
조직형태에 대한 것도 연맹 체제에서부터 산별노조 체제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 보건의료노조, 양대 노총 등 다른 노조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보건의료노조와 사안별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 환자와 국민의 건강, 직원 복지후생 등에 대해서는 반드시 연대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 노조들이 가지고 있는 편의주의적인 생각을 버렸으면 한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은 전공의를 과장 등 의사들의 심부름꾼으로 치부하는가하면 자신들보다 더 열악하게 근무하는 데도 자본가로 본다. 전공의들의 정체성이 변하는 과정인데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일관적이어야 한다.
초기에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 가입을 생각했었다. 상급단체가 있을 경우 노동자로서 보장받는 부분은 많지만 그 노선에 따라 공동행동을 취하는 것이 환자를 다루는 우리들로서는 부담이다. 서로 부담이 될 것이다. 상급단체 문제는 일단 연구 중이다.”

* 노력한 만큼 대우받아야

- 대전협에서 노조를 민주주의 발전이나 병원개혁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방패막이로만 본다는 지적이 있다. 수가문제와 관련해 기존 노조, 시민단체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그동안 의사들이 보여준 것처럼 집단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본다. 국민들에게 의사들은 독점성과 희소성, 폐쇄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이는 전문가성에 대한 일방적인 소외감에서 시작된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선배들의 잘못일 수 있다. 국민건강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행위는 모두 집단이기주의로 간주해버린다. 이는 정부와 언론이 무조건 의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려서 그렇다.
의약분업도 외국에서 실패한 정책을 정부가 들여온 것이다. 의약분업과 수가인하정책은 국민건강을 무시하고 진행된 것이다. 의사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좋은 길목에 식당을 열면 사람들은 ‘사장이 사업수완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들이 좋은 길목에 개원하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런 것들을 누가 바꿀 것인가.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루 8시간 근무와 주말을 가족과 보내고 노력한 만큼 최소한 대기업 수준의 급여를 보장받는 것이다. 노조를 만드는 것은 국민건강, 한국의학 발전, 정체성 확립, 처우개선을 위해서다.”

- 최근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서울대병원 전공의를 폭행한 일이 발생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 내 성희롱 등에 강력히 대응하지만 우리는 피교육자 입장으로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자, 전문가로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법적 해결은 최후의 방법이지만 전공의 전체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공식사과를 요청했다.
사과문을 낸다면 원만히 처리하겠다. 향후 병원 내 폭력방지를 법제화시키는 노력을 할 것이다.”

- 한 병원에서는 레지던트가 간호사를 폭행한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당사자가 대전협에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는 징계를 받았고 공개사과 요구를 받고 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오히려 간호사에게 폭행당했다고 하더라. 아직까지 전공의들은 보건의료노조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다. 대전협에서 사건을 공식 접수했으니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병원에는 여러 직무가 있고 서로 다른 직무를 맡은 사람들끼리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되 집단적인 힘이 개입돼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

- 향후 구체적인 계획은?
“3차까지 포럼을 진행하고 지역별 강연회를 가지겠다. 성급하게 진행하지는 않겠다. 빠르면 1년 뒤 노조가 결성될 것이다.”

김학태 기자(tae@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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