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전국의 고3 학생들(1차로 지방 4개, 서울 19개교 1,924명)은 ‘정부가 앞장서서 법을 무시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절망스럽다’ 제목의 성명에서 “인권도, 법도 무시하는 정부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엔 대한민국에 대한 절망감이 쌓여간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의 정보는 내가 믿고 따르는 선생님에게 제공한 것일 뿐, 교육부에 주겠다고 동의한 적 없거늘 왜 교육부는 우리의 정보를 제멋대로 가져가 사용하려 하는지, 그것을 반대하는 선생님들을 왜 이리 괴롭히는지 우리의 상식과 이성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항변하였다. 동시에 학생들은 “단지 입학사무의 효율성과 편의를 위해 학생들의 정보인권을 무시하는 행태는 과연 대학이 이 나라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곳이 맞는지 의심케 한다”고 준열히 꾸짖고 있다.

사태의 연원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약칭 NEIS)이다. 전자정부의 일환으로 시작된 NEIS란 학교에서만 관리하던 학생들의 생활 기록(약 100여 가지 개인 정보가 담긴)을 인터넷을 통하여 각 시도 교육청에 모아 교육부가 총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헌법과 법률 위반의 이유를 들어 지난 5월12일 ‘NEIS의 27개 개발영역 가운데 사생활의 비밀침해 등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교무/학사, 입(진)학, 및 보건영역은 입력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권고한다’는 결정을 내린바 있다. 그 뒤 전교조의 연가투쟁과 시민사회단체 반대로 교육부와 청와대, 전교조는 이 3개 영역을 삭제키로 합의하였으나, 교육부의 일방적인 합의 번복으로 NEIS 사태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었고 그 뒤 교육부는 NEIS로 고3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입력하게 하고 그 자료를 CD로 구워, 전국 모든 대학에 제공하려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법원은 인격권 침해 등의 소지가 큰 ‘CD 제작,배포는 불법’이라며 학생 동의 없이 학교생활기록부 정보를 수록한 CD를 제작, 각 대학에 배포하여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에 ‘NEIS 반대와 정보인권수호 공대위'는 현장에서 수집, 활용되는 정보 중에서 행정정보와 교육목적 수집정보를 구분해야 하며, NEIS에서 교무, 학사, 입(진)학, 보건 등 3개 개인정보 영역은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교육 정보의 관리, 운영을 위한 서버도 중앙 관리가 아닌 각급 단위 학교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학교 문 앞에 멈춘 인권과 민주주의

현재 학교 현장은 8일 국무총리 산하 교육정보화위원회(이하 정보위)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 전교조 발표에 따르면, 7일 현재까지 1차로 전국 2만명 가까운 교사들이 “정보위가 만일 NEIS 시행을 결정할 경우, 앞으로 NEIS와 관련된 일체의 업무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교사들은 “침해당하는 아이들의 인권 앞에 침묵하는 것은 교사의 양심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정보위가 설사 ‘NEIS 시행’을 결정한다고 해도 법원 최종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NEIS 업무 거부선언을 계속 확대해 가는 한편, NEIS 불복종 ‘100만인 서명운동’ 등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학교가 또 한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NEIS 사태를 학교현장에서 1년여 겪어온 필자로서는 한국 교육의 본질적인 병폐는 내버려 둔 채 NEIS 교육행정을 둘러싼 대립을 야기하고 있는 이 정부의 음직임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삼성SDS가 배후라는 모 일간지 기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올해도 여전히 아이들은 수능시험 이후 죽어가고 있으며 초등학생까지 그 대열에 포함되고 있다. 엄청난 사교육비와 죽음의 입시경쟁, 그리고 생활력 없는 반복적 암기식 교육, 수능 점수에 따라서 서열화 된 대학체제 등 한국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외면한 채, 교육행정만 디지털화 하면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착각을 교육행정서비스는 반영하고 있다.

행정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생각하는 순간, 교육은 도구적인 수단으로 전락하고, 학생은 단지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오직 행정편의주의만을 내세우는 정부 부처가 미래 세대의 교육을 말하는가.

아직도 교육계는 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민주주의 인권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인권교육이다. 그것은 공교육의 몫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학교 문 앞에서 그치고 있다. 행정의 민주화와 교육의 민주화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교육행정서비스 사태가 말해주고 있다. 정부 당국의 상식과 이성적인 태도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미래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이병우 본지 논설위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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