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순 본지 논설위원,빈곤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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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근로능력에 상관없이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기초생활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되었다. 그러나 올 9월 현재 수급자의 수는 종전의 생활보호제도가 시행되고 있던 2000년 9월보다 18만명이 줄었고, 1999년 4인 가구 평균소득의 39%이던 최저생계비는 2003년 32.4%로 낮아졌다.

또한 DJ정부의 정책기조였던 생산적 복지정책에 기초하여 시행되던 자활사업 참여자의 수는 2001년에 6만명이었으나, 현재는 1/3이 줄어들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2.9%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본격적인 자활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자활후견기관 사업은 겨우 그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96년과 2000년의 가구소비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한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는 그동안 하위 1%계층의 소득이 28.9% 하락한 데 비하여, 상위 1% 계층의 소득은 무려 77.5%나 증가하였다고 보고했고, KDI는 그 동안 빈곤율이 5.9%에서 11.4%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이 자료들은 DJ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생산적 복지의 꽃‘이라고 선전하던 자활사업은 민중을 속이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자활사업, 정치적 수사에 불과

기초법에 명시되어 있는 ‘최저생계의 사회적 보장’은커녕 오히려 빈민이 두 배나 더 늘어난 가운데 참여복지를 정책기조로 내세운 새 정부가 들어섰다. 작년 이맘때 대선을 앞두고 정부는 2003년에는 소득인정액제도의 도입으로 더 많은 사람이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을 것이며, 보장수준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수는 작년보다 4만명이 더 감소했고, 내년 예산안에 수급자의 수는 올해보다 한 명도 더 늘지 않았다. 이것은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 못지않은 거짓말 정부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경기침체와 신용불량자의 양산으로 중산층과 서민층이 대거 빈곤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는데, 소비성향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하여 빈곤에 적응된 기존의 빈곤층보다, 추락해 내리는 신빈곤층의 심리적 고통은 더 심하다.

따라서 신빈곤층은 기존의 빈곤층보다 사회적 불만이 높고, 반사회적 성향이 강하며, 범죄충동과 충동성 파괴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데, 올해 유난히 생계형 범죄와 생계형 자살이 폭증한 것이 이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청년실업자 마저 양산되고 있는 것이 올 겨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존권 보장보다 앞서는 게 무엇인가

800만명에 달하는 빈민들 중에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는 현재 136만명에 불과하다.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664만명의 빈곤층이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처절한 절망과 소외감 속에서 칼바람 부는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들을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으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빌어먹고, 훔쳐먹고, 사기쳐먹고, 강도질하여 먹고 살라는 것인가? 정부는 이들에 대한 생계와 취업대책을 세워 주고, 재기를 유도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생계형 자살이나 범죄를 저지르도록 내버려 두든지 양자간에 선택을 해야 한다.

국민의 생존권 보장과 범죄 방지보다 앞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국민들의 고통을 방치하고서 균형재정을 추구하고 자주국방을 실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산을 확보하여 사회적 타살을 막고, 범죄를 방지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더 시급한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빈곤의 늪에 빠졌으나, 조금만 사회적 도움을 제공하면 재기할 수 있는 빈민이 칼바람 부는 이 겨울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작 대책이라고 내 놓은 것은 로또복권으로 마련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00억원을 마치 정부의 예산인양 포장한 채 일선 공무원을 통하여 지급하는 것뿐이다.

로또복권은 도저히 빈곤탈출의 출구가 보이지 않은 절망의 서민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한 푼 두 푼 내놓은 돈인데 어떻게 정부예산으로 둔갑될 수 있단 말인가? 더욱 더 한심한 작태는 실제 현장에서는 긴급보호대상자로 선정되어야 할 사람에게도 쥐꼬리만한 민간기금이 대신 지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작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관변단체화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노정시키고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민간기금이 집권정당의 생색내기용으로 쓰이는 것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정부는 꼼수를 쓰지 말고 적자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예산을 확보하여 칼바람 부는 겨울에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절박한 빈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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