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지난 8월20일자 5면에서 다음과 같은 대형 기획기사를 실었다. 기획 제목은 「‘기업하기 힘든 나라’」였고 기사 제목은 「‘돈벌이=속물’ 겉과 속 다른 이중가치관 심어」라고 달았다.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거의 전면을 할애한 이 기사에서 동아일보의 논지는 이랬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기업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주범이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그럼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동아는 기사 앞머리에 문제가 된 교과서 내용을 옮겨 실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업은 경제활동에서 얻어진 이윤을 근로자와 형평성 있게 나누고 문화활동이나 장학사업 등에 대한 지원을 통해 기업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데 앞장서야 한다.(중학교 사회교과서)”

“기업은 자발적인 봉사와 이윤의 사회 환원을 통해 국가 인류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고등학교 생활경제)”

기업 부정적 인식 자체도 범죄시

독자들은 다시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이 내용이 뭐가 이상한가. 아무리 봐도 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그런데도 동아는 이 교과서가 ‘기업을 봉사단체’로 기술하고 있어 당장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불과 몇 달 전 수조원의 분식회계로 말썽을 빚었던 SK글로벌 사태의 악몽이 국민들 머리 속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동아는 과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업은 수익창출만이 절대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에 기업에 대해 ‘봉사니 이익의 사회환원이니’하는 교과서 내용을 당장 바꿔라.”

우리 국민들이 기업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자체를 범죄시하고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지난 주 조선, 동아, 중앙, 국민, 매경, 한경 등에 실렸다. 전경련이 지난달 수도권 초중고생 4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초중고생 경제마인드 분석 및 대응과제’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소재로 했다. 이들 신문은 조사결과 전경련이 충격에 휩싸인 사실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효율성과 형평성 중에서는 ‘형평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쪽(40.7%)이 ‘효율성’(36.2%)보다 높았다. 기업의 존재목적에 대해선 이윤추구(39.2%)와 사회기여(38.5%)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답했다. 경제발전의 주체는 정부(32.7%), 소비자(23.5%), 기업(22.6%)의 순으로 답했다. 경제주체 중 긍정적 이미지는 중소기업(46.7%), 대기업(39.4%), 노동조합(35.3%), 영세기업(29.5%), 재벌기업(29.0%) 순이었다. 성장과 환경 중 택일하라면 ‘환경’이라고 답한 학생이 52~73.5%인 반면 ‘성장’을 택한 학생은 11.6~22.1%에 불과했다. 외국인이 우리 땅을 맘대로 사게 내버려두는 건 결국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가 69.6%였고 ‘동의하지 않는다’가 19.1%였다.

이 결과를 놓고 신문들은 전경련만큼이나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들이 1년 내내 기업 편에 서서 ‘때려잡자 민주노총, 무찌르자 노동조합’을 외쳤는데 학생들에겐 씨알도 안 먹혔다는 한탄과 자조가 기사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청소년들의 반시장경제 인식” 호들갑

조선일보는 관련기사 첫 문장에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이 편향적인 경제인식을 갖고 있다”는 전경련 주장을 실었다. 조선은 기업의 존재 목적에 대해 ‘이윤추구’라고 답한 학생들이 1/3에 불과한 것에 대해서도 심한 박탈감을 드러냈다. 오로지 이윤추구만 해야 한다는 의견이 2/3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동아일보는 외국인들의 땅 투기에 대해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는 학생들의 의견이 절대다수인 것에 대해 전경련의 입을 빌어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의 충격이 가장 컸다. 중앙은 19일자 ‘청소년들의 반(反)시장경제 인식’이란 사설까지 동원했다. 사설 첫머리는 “학생들의 경제인식 조사결과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시작한다. 특히 선호도 순위에서 자신들이 목숨 걸고 칭찬해왔던 재벌기업이 최하위를 기록한데 대해선 충격을 금치 못했다. 특히 초등학생보다 중·고등학생으로 올라갈수록 대기업에 대한 순위가 떨어져 “학생들이 평등지상주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광분했다.

이들 신문들의 결론은 이렇다. “정부가 범국가적 캠페인을 통해 학생들에게 ‘친재벌 교육’을 실시하라”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고 싶으면 니들 돈으로 니들이 직접 해라.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leejh66@media.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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