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무장한 미군의 순시, 불안한 눈빛 속으로 미군에 대한 증오를 숨기고 있는 이라크 사람들, 연이은 폭탄 공격과 미군 사망자의 증가.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는 이라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그러나 점령과 저항의 혼돈에서도 스스로를 조직하며 새로운 노동운동을 태동시키려는 노동자들이 있다.

최근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노동자 모임’(U.S. Labor Against the War, USLAW)은 노동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베이컨, 국제항만창고노조 전 사무국장 클라렌스 토마스을 중심으로 이라크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지난주 시카고에서 가진 전국총회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베이컨은 “나를 진정으로 흥분하게 만든 것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하기 위해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라크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소개했다.

* 이라크에서 이는 새로운 노동운동

그는 “이라크에서 본 것은 군인들과 폭파범에만 주목하고 있는 일부 언론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며 “그들은 무엇보다도 일하러 가고, 그들의 가족을 부양하며, 스스로 살 집을 마련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후세인 정부가 붕괴하고 미국이 이라크의 경제재건을 약속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이라크에서 실업은 70%에 이르고 있다.

폴 브리머(Bremer) 이라크 군정 최고행정관이 약속한 차관과 토지, 30%의 임금인상은 여전히 구체화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한달 평균 임금은 60달러에 머물고 있다.

베이컨은 “평균 임금은 후세인 시절과 동일한 것이지만 당시에 제공되던 음식과 주택은 미군정 하에서 사라져 버렸다”며 “노동자들의 실제 수입은 하락하고 심지어 이 돈으로 살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미 정부의 자유시장 정책에 따라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되기 시작하면 이라크 민중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이라크 임시정부는 이라크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100% 소유를 합법화했으며 기업에 대한 세금을 15%로 낮춰놓았다.
그러나 미군정은 석유산업 등 주요 산업에 대한 노조결성 금지 조항 등 후세인 정부에서 만들어진 노동기본권 침해 법률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정을 거절하고 있다.

더구나 브리머(Bremer) 이라크 군정 최고행정관은 6월 활동제한에 관한 규제를 발표했는데 이 규제의 B항에는 파업과 노조결성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즉시 체포돼 전범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토마스는 “부시 행정부는 ‘우리가 철수하면 이라크에 각종 혼란이 닥칠 것’이라는 거짓된 환상을 창조하고 있다”며 “부시 행정부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며 그들은 이라크 노동자들이 조직된 힘을 갖는 걸 원치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바람과 달리 이미 석유공장과 항구 등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을 가지기 원하고 있으며 이미 스스로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 바그다드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 투쟁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조직화는 이라크노총(IFTU)과 이라크실업자노조(Union of the Unemployed in Iraq, UUI)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데 전자는 지난 80년대 이후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탄압 받아 온 민주노조운동 세력들로서 지난 5월 이라크 노총을 출범시켰다. 또한 후자는 노동자 공산당(Worker Communist Party)의 회원을 포함한 젊은 활동가들로서 UUI를 이끌고 있다.
이들 두 조직 모두 미군 점령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행동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토마스는 “UUI에 가입한 노조들은 단결권과 파업권을 금지하는 법령에 맞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반면 IFTU는 후세인 정부의 지지자들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조직화와 시위에 신중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에는 바그다드 인근 산업단지에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던 벽돌공장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공식 계약, 산재 예방, 퇴직금 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경영진은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이들을 해고하고 새로운 노동자들 고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파업 파괴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화기로 무장한 채 파업에 들어갔으며 결국 사용자는 임금인상과 의료서비스 마련 등에 합의했다.
베이컨은 “반전그룹들이 이들과 같은 투쟁에 주목한다면 많은 것을 지원할 수 있다”며 “이라크에서 노동자들 투쟁의 진실을 알게 되면 미군 점령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들이 비록 언어도 처해 있는 상황도 다르지만 스스로를 조직하고자하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며 이라크 노동운동에 대한 국제 노동단체들의 지원을 호소했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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