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주째 금요일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17일에는 한진중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소식을, 24일에는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의 분신기도 소식을 들어야 했다. 올 들어 두산중공업 고 배달호씨 분신사망에서부터 화물연대 박상준, 고성학 조합원의 자살, 세원테크 이현중씨 사망, 대한화섬노조 박동준 전 사무국장 자살… 비단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건설노동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등의 수를 일일이 헤아리지 않아도 노동자들의 죽음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매일같이 누구의 이름 앞에 ‘고(故)’를 붙여야 하는 이 ‘고통’의 고리는 어떻게 해야 끊어질 수 있을까.
고용보장을 해 달라, 임금을 조금 더 올려 달라며 시도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이 노동법이 아닌 형법상 사법처리대상이 되고, 노동법상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민법에 따라 손해배상이 청구되는 나라. 더 이상의 외로운 고공농성으로도, 장기투쟁으로도 해결가능성을 찾지 못한 노조 활동가들이 30여 년 전 전태일이 그랬듯이 ‘극단적’인 저항을 택할 수밖에 없는 나라. 그런데도 과정에 대한 ‘왜’라는 물음 없이 결과에 대한 합?불법만 따지는 나라.
어느 한 노조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정부와 자본에 맞선 우리의 투쟁방식과 대오를 정밀히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입니까? 전태일 열사가 죽었을 때와 달리 우린 70만 민주노총 조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김주익 지회장의 ‘외로운’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해한 거 아닙니까?”
제2, 제3의 잠재된 ‘열사’를 막고, 손배가압류 철폐 등 노동운동 탄압중단 등을 포함한 국민연금 개악저지,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위한 노동계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고 김주익 지회장 자살 이후 다음달 14일부터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었던 금속노조는 이해남 지회장 분신기도 등 긴박한 상황임을 감안, 오는 30~31일 열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그 시기를 앞당길 것을 검토할 예정이다. 민주노총도 24일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조직을 투쟁본부 체제로 전환하고 총파업을 불사하는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총파업 방침을 확인하는 한편 9일 열릴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결의를 모아낼 예정이다.
교착상태를 보이던 한진중 사태는 이번 주 중 교섭이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훈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17명은 25일 빈소를 방문해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노조가 교섭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비롯해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등 쟁점 사항에 대한 입장차가 커 교섭이 재개되더라도 타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6일에는 양대 노총이 함께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를 열고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정부의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안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이라며 △파견대상 업종 확대 중단 △기간제 사용시 사유제한 △특수고용노동자 노도자성 인정 등을 촉구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비정규공대위는 비정규 보호법안 내용에 대한 공청회와 포털사이트 내 여론화, 신문기고, 정책입법 책임자에 보내는 릴레이 편지 등을 통해 정부 입법안의 문제와 제대로 된 보호방향을 알려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공방도 치열해지고 있다. 28일에는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입법예고한 국민연금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한다. 국회는 이번 주부터 시작될 내년도 예산안 심의와 함께 각종 법 제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어서 본격적인 심의를 앞두고 관련 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23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있는 한국노총은 30~31일 회원조합대표자 워크숍을 열고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 비정규 차별철폐, 국민연금 개악저지 등 하반기 투쟁 분위기를 높여낼 계획이다. 또한 다단계 하도급구조, 조합원들의 잦은 현장 이동성 등을 배제한 채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공갈, 협박 등의 혐의로 몰아 노조간부의 구속과 검경의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건설노조 사태추이도 주목된다.
28일에는 노사정위와 국제노동기구(ILO)가 함께 주최하는 ‘한국의 단체교섭 구조와 사회적 대화에 관한 국제워크숍’이 열린다. ILO가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이은 노조 간부들의 죽음, 교섭구조의 몰이해 속에서 나온 표적수사, 구호만 거창했던 비정규 보호방안을 둘러싼 공방… ‘각국의 노동입법 수준으로 향상시켜 노동조건과 생활수준을 개선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ILO 눈에 우리의 노사관계가 어떻게 진단될까?

이정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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