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홍(공공연맹 정책실장)

자신을 객관화해 바라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힘들다. 그런데 이런 저런 여건으로 인해 주변에서 끊임없이 잘못(?) 이해하도록 배워 왔다면 더욱 힘들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못 배워온 것 같다.



그중 하나는 자기비하이다. 우리 근현대사가 순탄하지 않다 보니 스스로도 멸시하고 또한 제국주의 세력한테서 계속적으로 자기비하하도록 세뇌교육 받아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최근 몇 년간만 해도 대통령들이 이른바 통치사료들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인 파기까지 한 것을 놓고 언론에서는 "우리 민족은 기록을 할 줄 모르는 민족"이라고 떠들어대고 하도 자주 그렇게 듣다보니 그러려니 한다.

우리 민족이 기록을 할 줄 모르는 민족이라는 자신(?)에 찬 목소리를 단숨에 꺾을 수 있는 살아있는 기록 중 하나가 화성(흔히 수원성이라고 알고 있다)에 관한 기록이다. 화성은 200년 전에 쌓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쌓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했다. 이렇게 다시 쌓을 수 있었던 것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이다. 여기에 화성축조에 관련된 많은 기록들이 있어 오늘날 이를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봤자 성의 설계도, 성 건설에 참가한 주요 인물들의 역할, 축조과정에 대한 일정별 기록, 소요비용 정도 적어놓았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여기에는 화성 설계도는 물론 화성 건설에 쓰인 기계 종류와 제작방법, 심지어는 쓰인 못의 숫자까지 나와 있다. 아니, 그 정도만 해도 그러려니 한다.

그 당시로서는 결코 높으신 양반이라 볼 수 없는 장인에 대해 직종별로 일일이 이름을 기록하고 작업일수를 기록하고 있다. 석공은 2인이 한 패가 되고 하루 쌀6되에 돈 4전5푼을 지급했고 단순 잡역부인 모군은 하루 2전5푼을 주고 30명을 한패로 삼았다(당시도 임금격차가 만만치 않았다!)는 기록에 오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인부들 사기를 높이기 위해 호궤(요즘으로 말하면 회식)를 하는데 장인과 일꾼 한 사람에게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에 생선 자반 두 마리를 주었다는 기록 앞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화성이 완성된 후에는 어땠는가? 요즘 말로 가장 잘 알려진 이벤트는 아마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을 경축하기 위한 나들이(표면상 얘기이고 실제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면을 고려한 종합 이벤트), 을묘원행일 것이다. 8일에 걸친 이 행사 역시 마음만 먹는다면 완벽히(!) 재현할 수 있다면 믿겠는가? 긴 얘기 할 것 없이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총 행사비용이 10만38냥6전8푼이다. 전, 푼 단위까지 기록이 남아있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 혜경궁 홍씨 상차림과 관련해 "떡 23냥, 호두 5냥, 숭어찜 2냥, 초장 1전, 겨자 2전…"까지 기록된 것을 보면 완전히 질린다. 이에 대해 한영우 님은 이렇게 말한다. "원래 기록이라는 것은 정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증하는 수단이다.

기록을 철저히 남긴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가 정당하고 자신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기록중심으로 얘기하다보니 글이 조금 따분해졌다. 그러나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런 사항까지 이렇게 꼼꼼히 챙겼다면 다른 것들은 오죽 잘 챙겼겠는가?
책 두권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김동욱, 돌베개)와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한영우, 효형출판)을 들고 화성으로 한 번 떠나보자. 화성은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들이 있어서 천천히 산책 삼아, 책에서 본 내용을 확인하면서 걷기에 지루하지 않다. 방에 콕 들어박혀 책 두 권만으로 여행을 떠나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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