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26개 지방공사의료원에 이어 16일 파업을 예고했던 국·사립대병원 7곳도 큰 마찰 없이 노사간 대화를 통해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이같은 원만한 타결은 수년 동안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병원 사업장에선 이례적인 모습이다.

▶평화적 해결 배경= 병원 사업장이 파업까지 가지 않고 평화적으로 사태가 마무리된 가장 주된 이유는 직권중재가 남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올해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 회부 기준을 강화한다고 밝히면서 노사 모두 교섭에 무게중심을 뒀다. 16일 파업을 예고한 국·사립대 7곳은 15일 각각 지방노동위원회 조정회의가 잡혀 있었으나 조정을 연기하면서까지 노사가 대화를 이어갔다.

특히 타결이 가장 늦었던 경상대의 경우, 경남지노위가 조정 불성립 이후 직권중재가 아닌 "파업 시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최소한의 필수인력 배치 등을 조건으로 중재회부 보류 결정"을 노사에 통보, 새벽 5시께 교섭을 재개해 결국 합의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부도 지방공사의료원 문제에서 보듯 노-정간 교섭틀 마련이란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대화에 적극 나섰다. 이는 노조 요구가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의 공약 사항이기도 했던 만큼, 무리하게 부딪힐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전교조 사법처리, 철도파업 경찰투입, 노-정합의 파기 등으로 실추된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상반기 임단협이 마무리되는 국면에서 또 한차례 갈등이 재현되는 데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병원 경영 악화, 보건의료노조의 지난해 장기파업에 대한 피로도 등이 함께 맞물리면서 노사가 조금씩 양보한 결과이기도 하다.

▶보건노조 합의 성과= 노조는 올해 두 차례 시기집중투쟁에서 △의료의 공공성 강화 △산별교섭 합의 △직권중재 '무력화'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다. 우선 26개 지방공사의료원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한 이번 투쟁에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장기 과제였던 주무부처 이관(행자부→복지부)의 단초를 마련했다.

더불어 26개 지방공사의료원이 집단적으로 파업을 예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내부 조직적 결속을 다지는 부수 효과도 챙긴 셈이다. 이와 함께 서울대병원이 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다인용 병상 50% 확보, 영남대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 시설 개선 등 각 지부별로 실효성 있는 공공의료 강화 방안을 단체협약에서 얻어냈다. 핵심 과제였던 산별교섭 문제도 서울지역 대형병원인 한양대, 이대, 고대가 산별교섭에 잇따라 합의, 하반기로 넘어간 병원 산별 집단교섭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가 이번에 산별교섭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과제로 남게 됐다. 이밖에 서울대 비정규직 8명 정규직화, 47명 인력 충원, 고대가 비정규직 9명 정규직화, 10명 인력충원, 전북대 ERP 경영 기초자료로만 사용 등 노조의 주요 요구안을 상당부분 얻어내는 성과를 남겼다. 16일 타결된 국·사립대 지부들은 지부별 일정을 잡아 조합원 찬반투표를 벌일 예정이다.

▶시기집중투쟁 이후= 보건의료노조의 올 임단협은 두 차례 시기집중 투쟁을 거치면서 약 70% 이상 마무리 된 상태다. 하지만 노조 파업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산재의료관리원, 진주한일병원 노조가 오는 21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으며 백병원, 조선대병원 노조가 25일, 26일 잇따라 파업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장기파업을 벌였던 경희의료원 노사가 해고자복직, 징계자 원상회복 등 쟁점 사항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교섭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노조는 오는 30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상태. 보건노조 이주호 정책국장은 "지방공사의료원, 국·사립대의 평화적 해결이 나머지 미타결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직권중재 회부나 사측이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한다면 노조 임단협 마무리 국면에서 파국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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