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노사정위원회 본회의장.

김창성 경총 회장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노사정위에서 논의하기로 해놓고, 노동부장관이연내에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러면 노사정위원회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 비판의 대상이 된 최선정노동부 장관은 이에 대해 “반드시 노사정위 합의를 통해 노동시간단축을이끌어내겠다고 말했다”며, “정부가 적극 나서서 노사간의 합의를이끌어내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진념 기획예산처 장관도 “노동시간 단축은 반드시 가야 하는것”이라며, “노동계가 물리력을 쓰지 말고 대화에 나서고, 경영계는 적극적인자세를 가지면 정부는 노·사에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다”고경영계를 설득했다.

장관들과 공익위원 등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노동시간단축은 필요한것이며, 이 합의나 법 개정안 제출 시기를 올 정기국회로 하자”고 동의한 탓에최후까지 “시기를 못 박는 것은 안 된다”고 버틴 김 회장도 결국 이 내용에합의했다.

그런데 노사정위 본회의에서 장관들의 이런 적극적인 태도는 이전에 보기힘든 것이었다.

노·사간의 논쟁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나 몰라라”하던 장관들을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지켜본 참석자들은 이날 본회의에 앞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대중대통령이 한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가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음을 노동계는고려해야 한다. ” 파업을 하루 앞두고 민주노총에 자제를 요청하는 맥락에서나온 얘기였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최 노동부 장관이 노동시간 단축 관련법 개정안연내 국회 제출 방침을 발표한 배경에도 청와대가 있었다.

전날인 25일 한광옥 비서실장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복지 관계장관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 전향 검토'라는 내용이 흘러나온 것이다.

김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주5일 근무제 등 노동현안은 노사정위안에서풀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에 따라 정부 부처들도 주5일 수업제나 토요격주휴무제를 중단하고 모두노사정위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노사정위는 대통령과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통령과 장관의 발언이 나온 뒤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등노사정위 관계자들은 “노동시간단축 문제를 노·사·정 합의를 통해추진하겠다”는 태도에서 “연내 법개정안 국회 제출을 위해 신속하게추진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한 노사정위 관계자는 “청와대나 정부에서 방향을 잡으면 우리는 실무적으로논의를 하는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민주노총의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지금 노사정위는 정부가 당장 하고싶지 않거나 골치 아픈 일을 미뤄두는 곳”이라고 혹평하고 “실제 노사정위를움직이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 노동계나 경영계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 문제를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모든 문제의 결정에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노사정위의 위상이 다시 정립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민주노총의 허영구 부위원장은 “노사정위는 필요한 때 소집되는 비상설기구로 바꾸고, 중요한 문제는 노·정, 사·정간의 직접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말했다.

물론 노사정위의 위상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노사정위가 생산적이고 실행력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노사정위원장직을 대통령이나 적어도 총리가 맡아 책임있는 논의를 벌여야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