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구로6동 ‘서울 조선족교회’ 3층 예배당, 결혼행진곡에 맞춰 천천히 입장하던 신부의 얼굴에 눈물이 한방울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신부의 손을 잡은 야윈 얼굴의 신랑 눈가에도 눈물이 어렸다. 조선족 불법체류자 신부 오춘화(31)씨와 한국인 ‘췌장 말기 환자’ 신랑 최충렬(38)씨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백년가약’을 맺는 순간이었다.

신부 오씨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것은 1994년 8월. 가출한 아버지 대신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를 돕자는 생각에 중국돈 4만위안(한화 600만원)의 빚을 얻어 한국으로 왔다.

첫 직장은 대구의 한 전자공장이었다. 아침 7시4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야근해도 한달 월급은 36만원이었다.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석달 만에 회사에서 도망쳐 불법체류자가 됐다. 이후 서울의 식당을 전전하며 식당일을 했고, 월급 80만원 중 75만원을 중국으로 보냈다. 3년 만에 빚도 다 갚고, 2천만원이나 모았다.

그즈음이던 2000년 1월 오씨는 중장비 기사였던 남편 최씨를 만났다. 둘은 첫눈에 반했지만, 시댁에서는 ‘조선족 며느리는 안 된다’고 결혼을 반대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5월 인천 장기동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석달 전 딸 다연이도 낳았다. 하지만 결혼 다섯달 만에 남편은 실업자가 됐다. 굴착기를 살 때 졌던 빚을 기한 안에 갚지 못해 굴착기가 압류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배한테 사기까지 당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술로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2월께 남편은 배에 통증을 느꼈다. 이곳저곳 병원을 전전하다 지난 4월 원자력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치료방법도 없다고 했다.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이라고 했다.

최씨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안 시댁에서는 얼마 전 딸 다연이까지 데려갔다. 오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강제추방되면 딸까지 중국으로 함께 추방되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딸의 강제추방을 막기 위해 정식으로 결혼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국내에서 혼인신고를 하려면 남편 최씨가 호적등본 등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비행기도 탈 수 없는 남편을 위해 서울 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 등이 나섰다. 결국 법무부 쪽에서 최씨가 중국에 가지 않아도 법률적으로 혼인을 인정해 주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문제는 아직 남았다. 국적법상 오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혼인신고 뒤 2년 동안 결혼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남편이 2년 안에 죽는다면 국적 취득은 물거품이 된다.

결혼식장을 나서던 최씨는 “아내와 딸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다”며 “제가 떠나도 아내가 한국 국적을 얻어 딸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울먹였다. 옆에 있던 아내의 서러운 눈물도 그칠 줄을 몰랐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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