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하러 가고 싶지만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14일 오후 2시 화물연대 부산지부 조합원들이 집회를 가진 부산대 학생회관. ‘결사 투쟁’이라는 빨간 머리띠를 두른 정상도씨(43·부산 남구 대연동)가 동료 10여명과 함께 쇠파이프를 들고 집회장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결사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씨는 트레일러(25t) 지입차주다. 그는 화물차 기사생활 20여년 동안 빚만 8천여만원으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정씨가 화물차 기사생활을 시작한 것은 19살이던 1979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을 전전하다 운송회사 보조기사로 취직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운전실력으로 보조기사 2년 만에 운전면허를 땄고 기사로 승급, 8t 트럭을 몰았다. 당시 트럭기사는 공장에 다니던 또래 친구들에 비해 월급이 몇만원 더 많아 부러움을 샀다는 것이 정씨의 회상이다.

알뜰히 돈을 모은 그는 93년 초 1천3백만원짜리 11t 중고트럭을 구입, 마침내 ‘사장님’ 소리를 듣게 됐다. 이후 화물차를 사고 팔기를 3차례. 94년 6월에는 화물차 가운데 ‘최고’로 대접받는 트레일러 차주가 됐다.

트레일러 구입비는 8천2백만원. 인도금 1천5백만원을 주고 나머지 돈은 월 1백60만원씩 3년간 갚아나가는 조건이었다.

정씨는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트레일러를 주차해 새우잠을 자면서 부산~서울을 왕복하는 고된 생활을 계속했다. 힘든 만큼 매달 많게는 차 월부금을 제하고도 3백만원 가량을 벌어 수입이 괜찮았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깐. 97년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일감이 사라졌고 정씨는 2년여를 더 버티다 99년 말 1천9백만원에 트레일러를 팔았다. 정씨는 차값을 받아 밀린 지입료(운송회사에 내는 돈)와 주차장이 없어 집 부근 도로변에 세워놓았다가 적발된 주차위반 과태료 등 7백만원을 내야 했다.

그는 지난 3년여동안 구멍가게 등을 하다 지난달 12일 1천4백만원짜리 중고 트레일러를 다시 구입했다. 4월 말까지 보름여 작업을 해 운송료 2백여만원을 받을 게 있지만 아직 현금화하지는 못했다. 3개월짜리 어음인 탓이다.

또 2백만원으로는 지입료와 보험료 등을 내고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그는 하소연했다.

화물연대 부산지부의 파업후 결사대가 됐다는 정씨는 사흘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집사람은 그만두고 오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운전대를 놓은 이유를 생각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씨는 걱정이 돼 미리 연락도 없이 불쑥 집회장을 찾은 아내(43)를 보자 애써 태연한 척 헛기침을 했다.


〈박영철기자 yc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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