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철도원(鐵道員)을 뜻하는 ‘뽀뽀야’는 작가 아사다 지로(渚田次郞)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책으로 20여쪽 남짓한 짧은 분량이지만, 아내와 어린 딸을 잃고 철도에 인생을 바치다 최후까지 철도 옆에서 맞는 노(老) 철도원의 삶이 가슴 뭉클하다.

하지만 이 땅에 사는 한국 철도원들의 삶은 그리 감동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올 2월 15일 호남선 신태인에서 선로를 보수하던 용역 노동자 7명이 비명횡사했는가 하면, 지난 3일에는 30대 철도원이 선로(線路) 순회 도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두 살, 네 살배기 자녀들과 영영 이별했다.

‘2인1조 근무’라는 원칙만 지켜졌으면 살았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선로 위에 엎어져 있던 그를 발견한 것은 맞은편에서 운행하던 기관차였다. 철도노조측은 이처럼 일터에서 사망하는 한국의 ‘뽀뽀야’가 95년부터 매년 20~35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그 철도 노동자들이 오는 20일부터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현실화되면 승객은 물론 물류(物?)수송까지 타격받게 된다. 게다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정부가 원만한 교섭에 나서지 않을 경우 새 정부의 노동정책 파탄을 선언하겠다”며 밝혀 자칫 노사 간 분위기 전반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철도노조 요구는 인력 충원, 외주(?注) 용역화 철회, 해고자 복직, 철도 민영화법 폐기, 가압류 및 손해배상 철회, 휴일 및 야간수당 지급 등 6가지다. 이 중에는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사안도 있고, 쉽사리 합의 보기 어려운 내용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기자의 관심은 정부와 철도 노조의 주장 가운데 어떤 쪽이 더 타당성 있는지보다 정부가 스스로 만든 말의 ‘덫’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에 더 집중돼 있다. 파업 선언 이후 지난 14일 정부는 건설교통·법무·행정자치·노동·기획예산처 차관과 경찰청장·철도청장이 모여 ‘불법 파업 주동자 및 가담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키로 했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정부가 한동안 불법이라고 떠들다가 슬그머니 모든 것은 ‘면제’해 준 두산중공업 사태 때의 해결방식과 명백히 상충된다.

이번 파업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사전 조정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이라고 정부는 말했으나, 필수 공익사업장의 직권중재조항을 개정하겠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어떻게 들어맞는지 의문이다. 주동자를 사법 처리하겠다는 말 역시 노동부가 자랑스럽게 밝혔던 비폭력 불법 파업 불구속 수사원칙과 어떤 관계인지 알 길이 없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 노동위원장 시절 해고자 복직을 약속하고도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는 철도노조측의 외침에 정부가 이번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가령 이번에도 묘수(?手)를 내서 피해간다 한들 뒤이어 등장할 수십 개의 공공노조는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민간기업의 노사 마찰을 중재할 때는 ‘A원칙’을 적용하다가, 공기업에서 사건이 터지면 ‘B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둘러대는 방식으로는 노사관계가 안정될 수 없는 노릇이다. 새 정부의 다변(太辯)적인 수사(修辭)는 벌써 염증을 일으키는 것 같다. 오죽하면 15일 간담회에서 한 노조 관계자마저 “이번에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해 보지 그러느냐”는 질문에 “말만 무성한 것 같아 싫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할까.

(文甲植 사회부 차장대우 gsmo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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