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대표단은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북한 직총 대표자들과 남북노동자대표자회의를 진행했다. 이번 회의에선 올해 노동절을 기념하는 공동행사를 평양에서 갖기로 하는 등 남북노동자 교류사업을 활성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방북단에 참여했던 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이 4박5일간 체류하면서 보고느낀 점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11일 오후 4시30분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평양 순환공항을 출발해 창광거리에 위치한 고려호텔에 도착하였다. 1985년 지어진 고려호텔은 45층 고층건물로 객실이 500개이며 수용인원도 1000명이나 되는 대형 특급호텔이다. 주로 외국손님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이용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조그만 회의실에서 이번 회의에 참가한 남북 노동단체 간부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인사말이 있었고 곧바로 숙소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나서 남북노동단체 실무진이 서로 만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협의에 들어갔다. 물론 북의 직총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번 행사는 세 단체간 사전협의와 합의를 통해 만들기로 했다. 일정협의는 7시께까지 계속 되었지만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한국노총측 실무자가 당초 일정을 일부 수정해 북의 산업현장을 돌아보고 노동자를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초 직총에서 준비한 일정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다.

오후 7시부터 북의 직총에서 준비하는 저녁만찬이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있었다. 저녁만찬에는 술이 곁들여졌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마신 잔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주법'도 비슷했다. 우리사회에서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노조간부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데 북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식사를 하며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남북노동자대표자들은 금새 친해졌다.
만찬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저녁 10시30분부터 실무자회의가 다시 시작됐다. 회의내용은 초저녁에 합의하지 못한 일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실무자회의는 새벽 2시가 넘어서 끝났다. 한국노총이 요구한 사업장방문에 대해 노동 3단체가 합의를 봤다.

* 논란 거듭됐던 실무협의
평양도착 이틀째인 12일 오전 8시45분경 우리를 태운 버스는 향산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가 움직이면서 우리일행은 평양시가지와 농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아침시간이라 출근하는 평양시민들도 볼 수 있었다. 평양은 서울에 비해 붐비는 편은 아니지만 아침 출근시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경제사정을 반영이라도 하듯 고층빌딩이라 하더라도 외벽을 화려하게 색칠한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예 색칠을 하지 않았거나 오래돼 빛을 바랜 건물이 많았다. 평양의 건물모습은 남측에서 사진으로 본 모습과 크게 차이는 없었다. 향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의 농촌은 잘 정돈돼 있었다. 집들은 주로 기와집으로 지어졌는데 1층집뿐 아니라 2층과 3층집도 간혹 보였다. 옆자리에 앉은 직총간부는 북에는 토지가 개인소유가 아니라 리단위로 공동 관리되며 그 아래 마을별로 작업반이 있어 공동으로 관리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들녘으로 향하는 농민들은 집단으로 움직였다. 우리의 농촌과는 달리 북의 농촌에서는 젊은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아주 많이 보였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직총간부에게 "농촌 젊은이들이 평양이나 대도시로 나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그는 대부분 젊은이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으며 특별히 도시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은 '탄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10시30분경 향산에 도착해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과 그 유명한 보현사를 견학했다.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는 외국과 남측인사가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온 온갖 선물이 진열돼 있었다. 총 161개국에서 5만1,518점이 전시돼 있다고 북측 안내원이 설명했다. 내부에서는 일체의 사진촬영이 금지됐다. 지하 6층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북측에서는 전람관에 소장된 선물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현사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곳으로 팔만대장경과 직지심경, 교정별곡 등 국보급 유물들이 보관돼 있었다.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과 보현사 견학을 마치고 우리는 평양시직맹이 주최하는 환영대회에 참석했다. 정말 열렬한 환영이었다. 환영대회는 "어떠한 곤란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아도 남북노동자들의 연대의식으로 보란듯이 교류협력사업을 강화해나가자"는 요지의 남북 노동 3단체 대표자 연설과 환영공연으로 진행됐다.
이날 저녁을 마친 노동 3단체 실무자들은 다시 만나 이튿날 새벽5시30분까지 다음날 열리는 '2003년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 대표자회의' 진행순서와 회의에서 채택할 선언문과 합의서 내용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밤샘회의는 각 조직간 정치적 입장, 언어상 표현 차이로 인해 여러번 우여곡절을 거쳐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냈다.

3월 13일 오전 10시 우리는 호텔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양각도 국제호텔에 도착했다. '2003년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대표자회의'가 이곳 양각도 국제호텔 원형회의실에서 열리게 돼있었다. 말하자면 이번 양노총이 방북하고 노동 3단체 대표단이 평양에서 만나는 목적사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회의장에는 노동 3단체 대표자말고도 직총산하 간부들이 대거 참관했다. 사회는 한국노총 이규홍 통일연대국장과 김영제 민주노총 통일국장, 직총 최창만 통일사업부장이 번갈아 보았다.
회의는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과 유덕상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염순길 북한직총위원장의 기조연설에 이어 유재섭 한국노총 부위원장, 신승철 민주노총 부위원장, 직총 부위원장의 토의발언이 이어졌다. 토의발언에서는 최근 한반도에 조성된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기운 구축을 위해 올해 노동절을 평양서 공동으로 개최하며 6.15km통일마라톤대회를 추진하고, 통일축구대회 개최, 백두산 공동등산 진행, 산업별 지역별 교류협력사업 추진 등에 대한 의견이 개진됐다. 회의에서는 전날 실무진이 준비한 '6.15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노동자 통일선언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2003년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 대표자회의'는 선언문을 통해 "조국통일은 남북당국이 합의하고 온 세계가 공인한 6.15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실현되어야 한다"며 △조국통일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실현할 것 △조국통일은 군사적 위협이나 전쟁이 아닌 평화적으로 실현할 것 △조국통일은 온 민족의 대단결로 이룩할 것 등 3대원칙을 천명했다. 남북 노동 3단체가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이라는 대의에 입각해 서로의 입장차를 극복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역사상 처음 만들어 낸 '통일선언문'인 것이다.

통일선언문을 채택한 후 대표자들은 고려호텔로 자리를 옮겨 산업별·부문별 모임을 가졌다. 남과 북의 노동단체들은 6·15공동선언의 기치아래 진행돼 온 남북노동자들의 교류협력 연대사업의 의의와 성과를 확인하고 이를 더욱 확대 발전시키는 것이 최근 조성된 엄중한 정세를 타개해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 평화를 수호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5개항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합의서의 주요내용은 첫째, 올해 5.1절을 평양에서 공동으로 기념하며, 이 기회에 <남북노동자 6.15km 통일마라톤대회>를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들을 진행하기로 했고, 둘째, 가까운 시기에 서울에서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며, 셋째, 6.15공동선언 발표 3돌을 맞으며 올해 안으로 남북노동자들의 백두산 공동 등산을 진행하기로 했고, 넷째, 산별 및 지역별 교류·협력사업들을 추진해 나가며 6·15공동선언에 대한 국제적 연대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가며, 마지막으로 위의 합의사항을 실현해 나가기 위하여 필요한 실무접촉들을 계속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 민족화해와 긴장완화에 기여
이번에 남북노동자대표자들이 채택한 '통일선언문'과 '합의서'는 핵문제로 북미간의 엄혹한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완화 및 민족의 화해와 협력기반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일선언문'과 '합의서'를 채택하고 남북노동자대표자 일행은 전과는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후에는 남북 3단체 대표자들이 평양에 위치한 '대동강 맥주공장'을 방문해 생산시설 현장을 함께 돌아보는 등 허심탄회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대동강맥주공장은 가동된 지 1년밖에 안된 공장으로 자동화된 현대식 건물이었다. 견학을 끝내고 마지막 코스에서 금방 만들어진 맥주를 노동 3단체 간부들이 함께 마시며 '남북노동자가 앞장서서 평화통일을 앞당길 것'을 다짐했다.

다음날 오후에는 이례적으로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해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과 만나 서로 인사와 기념촬영을 한 후 '6·15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남북노동자들의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들을 평가하고 앞으로도 나라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노동자들이 계속 함께 노력해 나갈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키가 훤칠한 노신사였다. 나이가 일흔을 훨씬 넘었을 텐데 건강한 모습이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15일 아침 일찍 남측대표단 일행과 북측대표단을 실은 버스는 평양 순안공황으로 향했다. 처음에 낯설게 느껴졌던 평양거리와 농촌풍경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직총간부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을 실은 비행기는 중국 베이징으로 향했다. 직선거리로는 1시간 밖에 안되는 거리를 다른 나라를 경유해 여러 시간이 걸려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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