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탁(민주노총 부위원장)

지난달 15일 전 세계 600여개 도시에서 천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전쟁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무기사찰단의 긍정적인 결과보고도, 프랑스를 비롯한 안보리 이사국들의 반대도 아직 부시를 말리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저항의 무기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저 공포에 떨며 폭격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인류가 개발한 첨단기술로 인류를 말살하는 전쟁의 시대는 이제 그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전쟁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다. 이미 패권은 형성되어 있으나, 더러운 자본은 생존의 탈출구를 찾기 위한 제물로 인류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전 인류가 하나의 전선에 서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라크로 간다. 그러나 전쟁의 위협은 한반도에도 구체화되고 있다. 자각하지 못할 뿐 우리는 같은 전선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목표는 이라크의 문제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명확히 알려내는 것이다.

전 세계 국가 중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항상 높게 도사리고 있는 나라, 미국인들이 이라크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 정작 이 나라에서 반전의 주장은 아직 거리에서 큰 대열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조만간 커다란 대열이 형성될 것임을 알고 있다. 촛불시위에서 만들고자 했던 우리의 희망은 전 인류를 전쟁과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국제적인 전선으로 곧바로 합류될 것이다.

이번에 출발하는 팀은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와 함께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 김정욱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대외협력부장이 '전쟁반대 국제 노동자 대표단'의 이름으로 가게 된다. 민주노총은 사담 후세인의 전제정치를 핑계로 전쟁반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국제 노동조직에 대해 국제 노동자 대표단을 제안하면서 반전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형성하려고 했다. 아울러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전 세계적으로 알려내고 미국 주도의 세계화와 군사패권주의에 대항하는 국제전선을 형성하고자 했다. 아쉽게 이번 팀에 함께 합류하는 조직이 없지만, 계속 조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SUD에서 우리와 함께 할 의사를 밝혀왔다. 다만 시일이 촉박하여 이번에 함께 할 수는 없으나 시간을 두고서 조직을 해나가기로 했다.

우리 팀은 14일 4시 25분 비행기로 프랑스 파리를 경유 요르단 암만에 도착해서 현지 상황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18일 정도에 바그다드로 들어갈 계획이다. 바그다드에 들어가서는 이미 들어가 있는 현지의 활동가들을 만나고,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작업장, 다리, 통신탑, 발전 시설 등 공습 때 가장 먼저 폭격 당할 민간시설을 방문하는 등의 활동을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다 유동적이기 때문에 현지에 도착해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가는 시기가 침공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여서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고 있다. 필자에게도 일정한 긴장감은 있다. 그러나 이라크 민중들은 언제나 폭격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한반도 역시 전쟁의 참화를 겪은 바 있고, 또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있지 않은가. 반전운동에서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감수하는 위험으로 해서 전쟁반대운동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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