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까. 이제 한달도 채 남지않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갖게되는 궁금증이다. 노동계 안팎에선 "이전 정권과는 달라질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정권의 근본 한계를 지적하며 기대할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새 정부와 노동계가 어떤 관계를 설정하게 될지를 3회로 나눠 전망해 봤다.
① 민주노총(2월4일) ② 한국노총(2월5일) ③ 새 정부(2월6일) <편집자 주>


한국노총은 노무현 새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참여와 협상'이란 기존 대 정부 기조를 바꾸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노총이 새 정부 아래서도 이전처럼 노동계 유일의 협상파트너로 자리매김할지는 새 정부와 민주노총의 관계 등 변수가 있다. 이는 어쨌든 한국노총이 그 동안 비교우위로 삼아왔던 대 정부 위상의 변화 여부도 가늠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우려에서 관망으로 바뀌는 시선

한국노총 내부에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 정부 관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던 게 사실이다. 주요연맹을 포함해 과반수 이상의 연맹과 지역본부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것도 껄끄러운 부분인데다, 노무현 당선자와 측근 그룹의 성향이 '친민주노총'에 가까워 '비한국노총' 성향을 보일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에 전문위원직으로 참여했던 현기환 한국노총 전 대외협력본부장이 인수위 내부갈등을 이유로 사퇴한 것과 관련, 인수위쪽에 대화창구가 없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기도 했다. 더구나 이후 한국노총쪽 전문위원과 자문위원 파견문제마저도 인수위쪽의 난색표명으로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사정과 관련해 이남순 위원장은 올해 들어 몇 차례 회의석상에서 "노 당선자 고위그룹 내에 '친한국노총' 인사들이 존재한다. 새 정부와 관계는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다"며 다른 한국노총 간부들을 안심시키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4일 회원조합 대표자회의에 제출됐던 공식 회의자료에는 대 정부 관계와 관련한 우려섞인 전망을 내놔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자료에선 △당선자 측근 그룹에 민주노총 1기 및 2기 집행부 간부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과 △양노총 조직률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초기 노동계 대화상대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노사정위 위상강화를 조건으로 민주노총을 교섭창구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들어 이전까지 지속돼 온 교섭패턴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대 정부 관계에 대한 이런 우려 섞인 전망은 지난 대선 때 정치방침 혼선에 대한 비판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전망은 최근의 상황 전개와 현실 여건들 속에서 관망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 노사정위-민주노총 관계의 함수

금융노조의 한 임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전체 한국노총이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처럼 비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 정부 관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개혁적 정부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변화가 없는 새 정부가 장외투쟁을 강조하는 민주노총보다 협상을 우선하는 한국노총이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16개 연맹들 역시 투쟁보단 참여와 협상을 강조하는 성향의 조직들이기 때문에 대 정부 관계에서 걸림돌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더불어 민주노총 내부 분위기 상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아직까지도 불투명하다는 점 또한 이런 전망을 가능케 한 요인 중의 하나다.

이에 대해 강훈중 홍보국장은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노총이 단독으로 대화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생각들이 없어진지 오래다. 97년 정리해고 합의 때도 그랬지만 민주노총이 들어와서 함께 논의할 경우 공동책임을 지게 돼 오히려 부담이 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선 방침을 둘러싼 내부 논란과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는 한국노총의 현장 동력이 향후 상층부 교섭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노사정위 한 관계자는 최근 사견임을 전제로 "유일하게 노사정위에 참여해 온 한국노총이 단결되지 않고 내부갈등을 지속할 경우 협상파트너로 상대하기엔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을 참여시키기 위해 노사정위 위상강화와 직결된 제도개선 카드를 던질 경우 한국노총쪽에서 서운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어떤 수준에서 선택할 것인지와 일정정도 직결돼 있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문제는 어떤 식으로는 새 정부와 한국노총과의 관계 설정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노총의 대 정부관계 기조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새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가늠하게 될 첫 변수는 '조흥은행 매각' 문제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남순 위원장의 출신 조직이기도 한 조흥은행의 매각 문제는 이 위원장이 조합원들 앞에서 직접 '사퇴 불사'를 공언하고 "헐값 매각시 직접 총파업선언을 내리겠다"고 배수진을 친 데서 보듯 현재진행형인 초미의 관심사이다.

* 새 정부 조흥은 처리 방향 '초미'

현재 조흥은행 매각문제는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신한지주회사가 선정되고, 세부협상과정에서 제3자에게 기업가치 평가를 의뢰키로 한 상태다.

제3자에 의한 실사, 인수가격 협상 등의 일정을 감안할 때 본계약 체결 시기는 새 정부 출범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정표 상으로도 조흥은행 매각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대 한국노총 관계문제를 감안해 결정해야 하는 첫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노무현 당선자가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과 허흥진 조흥은행지부 위원장을 만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면담 내용에 관심이 증폭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제3자 실사가 채택된 점이나, 우선협상 대상자가 선정된 이후에도 노조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독자생존에 대한 언질을 받았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독자생존 방향으로 간다기보다 노 당선자가 대선 후보 시절 밝힌 대로 '기업가치를 최대한 반영한 가격으로 매각,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매각방식 논의' 등의 방침을 따르는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편, 주5일제 등 제도개선 3대 현안이 있기는 하지만 주5일제의 경우 인수위쪽에서 전면적 재논의는 어렵다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한국노총은 입법화 과정에서 새 정부가 노동계 요구를 어떤 수위와 방식으로 수용하느냐를 주목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현재 한국노총 분위기가 과거에 비해 침체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92년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노총은 첫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 속에 전폭적 지원을 보냈다. 97년 대선 당시에도 논란을 겪긴 했지만 정책연합을 이뤘던 만큼 DJ정부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그러나 이른바 문민정부에선 93년 '사회적 합의'(임금가이드라인)로 인해 한국노총 내 조직이탈을 불러왔고, 김대중 정부 아래서 정리해고 칼바람이 휘몰아쳐 대 정부 불신을 증폭시켰다. 강훈중 홍보국장은 "이런 경험들이 노무현 새 정부에 대해서도 앞으로 노동계 현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망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조흥은행 매각 문제와 노사정위 위상 논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 한층 더 관심을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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