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와 노동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될까. 이제 한달도 채 남지않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갖게되는 궁금증이다. 노동계 안팎에선 "이전 정권과는 달라질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정권의 근본 한계를 지적하며 기대할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새 정부와 노동계가 어떤 관계를 설정하게 될지를 3회로 나눠 전망해 봤다.
① 민주노총(2월3일) ② 한국노총(2월4일) ③ 새 정부(2월5일) <편집자 주>


민주노총쪽에서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 문제를 대하는 시각은 좀 복잡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역대 어느 집권자보다 '친노동'적이고 개혁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한다면 최근 대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유연화 발언이나 노조 정치화 우려 발언은 역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노 당선자가 비정규직 문제와 공공부분 민영화 문제 등 노동계 전체 이슈에 대해선 기존 정권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민주노총의 조직 기반인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도 보여 민주노총을 긴장시키고 있다.

더구나 노무현 당선자 스스로도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깊고 필요에 따라서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맡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와 같이 노동운동을 잘 알고 그래서 약점과 한계까지도 꿰뚫고 있는 대통령은 그래서 오히려 껄끄러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노동계를 잘 알아 '껄끄런' 대통령

돌이켜 보면, 민주노총은 지난 97년 IMF 위기가 닥친 김대중 정권 초기 1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합법화 이후 줄곧 정부와는 투쟁 중심의 갈등관계를 지속해 왔다. 민주노총의 이런 기조에 대해선 주요 사회세력으로서 위상을 공인 받은 이면에 여전히 정부 정책에 대한 영향력 부재와 일부 대공장에 의존한 조직력이란 비판이 있어왔다.

내부적으로도 심각한 힘의 불균형 현상을 드러낸 것은 물론, 비정규직 문제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등 노동계 핵심 사안에 대해 명실상부한 총연맹으로서의 대응을 조직하지 못했으며, 일부 호황산업을 중심으로 조직력을 보유한 노조들은 기업별 노조 체제에 안주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사정과 관련해 민주노총도 자체평가를 통해 "지난 5년 동안 정리해고로 조합원 6만여명 이상이 감소했고 전체 조직률도 12%대에서 정체돼 있는 상황이며 대기업 정규직 중심노조는 기업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선 "'집단 이기주의'라는 공격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공장 정규직노조 중심의 활동기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이들의 조직적 힘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반복되는 총파업 전술 문제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매년 참여정도가 특정 산별연맹을 중심으로 10만명선을 넘지 못했고 그나마 주요 대공장 노조의 참여여부가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돼 왔다. 민주노총이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당장 정권과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또 그런 조직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노무현 당선자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공세적으로 발언하는 것도 이런 민주노총의 내부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노총 산하 산별연맹 관계자도 "노무현 정권이 노동운동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며 "민주노총을 조직력에 기반한 투쟁보다는 대화와 협상으로 이끌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민주노총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제조업과 공공부문으로 쪼개서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며 "민주노총 차원의 총체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주5일제 2월 처리여부 '1차 관문'

민주노총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올해 사업계획과 향후 5년간 운동전망을 통해 산별노조 강화와 비정규직 조직화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위력을 발휘해 온 대공장 노조의 조직력을 효과적으로 산별노조로 전환, 산별체제를 안정화시키고 비정규직 조직화를 통해 노동운동의 계급적 대표성을 확고히 해나간다는 전략이다.

대공장 정규직 노조들이 중심을 이룬 금속산업연맹은 특히 전체 금속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기업별 의식을 뛰어넘는 계급적 단결력을 높인 데 기초해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확대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이는 단위노조의 산별 전환이 더뎌지면서 연맹 내 사업장간 임금 및 복지 수준에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전체 노동운동 차원에서 볼 때는 총체적인 대 자본 및 대 정부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기반성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금속산업연맹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은 주5일 근무제 전면실시를 요구하는 공세적인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전산업적인 파업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와 민주노총은 주5일 근무제 실시 문제를 놓고 어떤 형태로든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발생한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배달호 조합원의 분신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은 상황에서 정부가 주5일 근무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 관계자는 "상반기 주5일 근무제 전면실시를 위한 공세적 투쟁을 앞두고 있지만 정부가 2월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악을 강행할 경우 일정을 조정해 법안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분신사태가 해결되지 못한 채 2월 임시국회를 겨냥한 민주노총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노무현 정권은 출범도 하기 전 민주노총과 갈등을 빚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선실장도 "두산중공업 사태와 주5일 근무제가 노무현 정권과 노동계의 관계를 판가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노동계 현안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2월 임시국회에서 주5일 근무제 실시를 빙자해 근로기준법 개악을 강행하려 한다면 민주노총과 노무현 정권의 관계는 대립적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사정위 문제도 또 다른 변수

이와 함께 노무현 새 정부가 추진하는 노사정위원회 위상 강화와 직결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문제도 또 다른 관계 설정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교섭체제 문제 이전에 노정 신뢰회복을 위한 가시적 조치 선행 △노정, 노자, 노사정 등 총체적인 교섭체제 마련 △민주노총 참여 정부기구 개편 등을 참여 원칙으로 상정해 놓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핵심은 바로 산별교섭 체계의 마련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민주노총은 이번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 참여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채 정부안이 나올 경우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결정하겠다는 안을 올려놓고 있다. 사실상 노사정위 참여문제에 대해 공을 정부에 넘긴 것이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선실장은 "민주노총을 대화파트너로 삼으려면 민주노총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정부 구상이 구체화되면 민주노총도 참여문제를 본격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사정위 참여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김대중 정부식의 노사정위는 문제가 많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며 "따라서 인수위측이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인수위원회와 협의를 벌여왔던 민주노총 관계자는 "인수위원회가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잇는 것도 아닌데다 민주노총 요구를 책임 있게 집행할 수 있는 기구도 아니다"며 "노사정위 참여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에야 구체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노무현 당선자의 개혁적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선 실장은 "노무현 정권이 자기가 말한 공약만이라도 제대로 지키길 바란다"며 "조직력을 동원해 힘으로 풀어야 할 문제에 있어서는 회피하지 않을 것이지만 비정규직문제 해결이나 재벌개혁 등을 추진한다면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