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의 한 할인점에 근무하는 김모씨(42·여)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대통령선거도 참여를 포기했다. 365일 쉬지 않고 영업하는 할인점의 특성상 선거가 있는 19일 당일에도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투표소인 동사무소까지 왕복하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려 투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건설회사 일용직 최모씨(50·서울 성동구 금호동)도 마음속에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가 있지만 투표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일이라도 생계 때문에 일단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본 뒤 일이 없으면 집에 돌아와 투표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장 출근이나 생계 문제로 헌법에 보장된 신성한 권리를 포기하는 시민들이 많다. 특히 투표 포기자들 대부분이 일용직 근로자나 파트타이머 등 사회의 저소득층이어서 이들에 대한 참정권 보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일부 악덕 사업주는 근로자들의 투표권을 방해하기 위해 선거 당일 노골적으로 새벽 출근을 지시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등에는 ‘선거일을 임시 공휴일이 아닌 유급휴일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항공사 등 해외출장이 잦은 기업의 임직원들도 투표권 행사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의 경우 조종사 1,200명, 객실승무원 3,000명 가운데 30%는 운항일정상 투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도 조종사와 승무원을 합해 900명 정도는 당일 비행 스케줄로 투표 참여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16일 “대통령 선거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있지만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관공서와 정부 투자기관에만 적용돼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며 “영세 중소기업과 백화점·할인점 노동자 2백만명은 사실상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조휘광 교육선전실장도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위해 선관위에 문의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항공사는 공익적 성격이 강한 만큼 예외 규정을 두어 직원들에게 부재자 투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홍민·오창민·정유미기자 riski@kyunghyang.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