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용서와 평화가 왜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겁니까?"

9월24일, 여의도성모병원 앞 집회에서 보건의료노조 정해선 부위원장은 가톨릭에 물었다. 그러나 다섯 겹 '인의 장막'으로 정문을 밀봉한 경찰의 방패가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불성실교섭, 경찰투입, 대규모 고소고발·징계, 대화거부 등 가톨릭의 전근대적 노사관이 병원파업 사태를 벼랑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가톨릭의 이율배반은 경찰투입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가톨릭은 지난 9월11일 강남성모병원 경찰침탈 당시 병원 안 성당에 피신한 조합원 20여명을 연행토록 성당진입을 서류로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겁에 질린 노동자들이 십자가를 붙들고 절규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신부의 용인 아래 가톨릭 성지가 군화발에 짓밟힌 것이다. 더구나 이날은 가톨릭 서울대교구의 중재로 명동성당 백남용 주임 신부와 노조 집행부가 파업 해결을 위한
면담을 갖기로 약속했던 날. 오른손으로 악수를 청하며 왼손으로 뺨을 때린 셈이다.

가톨릭측은 앞선 교섭과정부터 불성실로 일관했다. CMC의 한 지부장은 "신부의 권위를 내세워 노조위원장과 동등한 관계로 대화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차수련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이같은 현상을 "가톨릭 교단의 급속한 보수화"로 진단했다. 노사가 서로를 인정하고 협상에 임해야 하는데, '신의 대리자로 위치한 신부'가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거 대전성모병원과 평화방송 등 가톨릭 관련 사업장의 파업사태가 모두 해결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일례다. 교회 내부의 봉건적 위계질서도 사태해결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다.

차 위원장은 "그들 스스로의 가르침대로 억압받는 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 한다면 폭력과 탄압은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살인적 노동강도로 성모병원 여성노동자의 유산률은 30%에 이르고 있다. 주휴도 없이 하루 10시간씩 세탁업무를 보는 비정규직의 임금은 고작 59만원이다.

일찍이 교황 레오13세는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을 명확히 하며 '노동은 천부의 권리'라고 가르쳤다. 가톨릭은 직권중재와 같은 세속의 악법으로 스스로 정한 종교적 율법을 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회 안팎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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