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이들. 이른바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동포 노동자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보다도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그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봤다.<편집자 주>


불법체류 신분으로 혹독한 고국생활…동포 인정 자유왕래 보장 필요

지난 94년 연변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유 아무개(여·56)씨. 여느 중국동포들이 올해 불법체류자진신고를 하는 동안 유씨는 그렇지 않았다. 1년 동안 자유가 주어진 뒤 다시 떠밀려 출국해야 할 법무부 정책에 반발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사실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운이 좋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위장결혼, 그의 신분은 합법적이다.

반면 옆에 앉아 있는 진 아무개(여·63)씨는 90년 베이징에서 건너 온 뒤 처음 한 달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불법체류 신분이다. 시댁식구의 초청으로 1개월 짜리 관광비자를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유씨처럼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불법체류 신분으로 살아온 지 12년. 스스로를 합법적인 노동자, 해외동포여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나는 불법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입니다"라고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 거액의 입국비용, 한국인의 멸시

진씨는 친족들의 초청으로 다행히 입국을 위해 빚을 지지는 않은 반면 유씨는 위장결혼을 위해 94년 당시 우리 돈으로 약 1,000만원 가량을 현지 브로커와 위장남편에게 지불했다. 물론 빚진 돈이었으며 유씨는 98년 초가 되어서야 이 돈을 다 갚았다.

1999년 12월 서울조선족 교회에서 중국동포 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5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동포들 중 90%가 불법체류 상태다. 이 가운데 65%가 친척방문과 공무로 입국했다. 또 입국과정에서 진 빚을 보면 23%가 1,000만원 이상, 37%가 700만원 이상이고 500만원 이하는 15%였다.

어렵사리 빌린 돈으로 한국에 들어오면 중국 동포에 대한 내국인들의 편협한 인식은 이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상당수가 불법체류로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고 이로 인한 불이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한국남자와 위장 결혼해 불법단속을 피할 수 있었던 유씨는 입국 뒤 종묘공원에서 노점상을 2000년까지 했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노점을 시작한 유씨를 괴롭혔던 것은 중국 동포들만 대상으로 단속을 하는 것이었다.

"장사하던 자리에서 쫓겨나기를 반복해 지칠 대로 지쳤어요. '동포차별'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을 삭이기 힘들어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홍제동의 한 조선족 교회를 찾게 된 것이지요."

그녀는 최근에 동포 체육대회에서 손목을 다칠 때까지는 교회에서 소개해 준 가정집에서 파출부로 일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연변사투리가 진한 유씨의 말투를 듣는 순간 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커피는 고사하고 찬물한잔 마실 시간도 주지 않더라고요. 아마 내국인 파출부였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임금체불과 성폭행 그리고 가정파탄

유씨와 진씨는 경험하지 않았지만 불법체류를 미끼로 한 체불임금과 성폭행도 심각한 수준이다.

유씨는 함께 교회에 다니는 한 중국 동포가 양어장에서 2년 동안 일한 급여 2,000여 만원을 받지 못해 양어장에 드러누워 시위 중이라고 말해했다. 이 동포는 불법체류 신분에 대한 부담으로 주인에게 급여 지급 요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이 다니는 교회가 소속된 '조선족 복지선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7월 30대 후반의 동포여성이 식당지배인에게 불법체류신고 협박을 받으며 잠자리를 함께 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를 거부한 이 동포는 지배인의 신고로 강제출국 당했으며 앞서 일한 젊은 중국 동포 여성도 신고협박을 받으며 수차례 성폭행 당한 뒤 강제출국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동포들의 장기간 한국거주는 가정파탄과 자녀교육부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위장결혼을 해서 들어온 동포여성의 경우 상대 남자가 금전적인 대가 외에 잠자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하고 2년 뒤에나 나오게 돼 있는 주민등록증에 대한 협박으로 결국 원치않는 희생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자책감으로 이어져 중국에 있는 남편과 이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조선족 복지선교센터 임광빈 소장은 "외국생활로 인한 으식의 변화, 원치 않는 성관계 등으로 한국에 취업했다가 돌아가는 가정의 경우 이혼율이 50%가 넘는다"고 말했다. 서울조선족교회에 따르면 중국동포 68%가 체불임금 경험이 있고 45%가 잊지 못할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장기간 거주는 또 자녀교육의 부실로 이어진다. 유씨와 진씨는 "자녀가 어릴 때 밀입국한 동포들은 나중에 자녀가 부모를 몰라보는 경우가 허다하고 교육미비로 탈선의 길을 걷는 재중동포 자녀들이 많다"고 말했다.

* 재외동포법 개정 서둘러야

이런 사정으로 인해 중국 현지 동포들 사이에선 내국인들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게 유씨와 진씨의 주장이다.

한국에서 혹독하게 지내다가 중국으로 돌아간 동포들의 분노는 엉뚱한 한국인들, 특히 한국기업인들에게 돌아가 중국내 한국기업에 경제적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유씨와 진씨는 "중국으로 돌아간 대부분의 동포들은 '오냐, 너희들이 중국에 오거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하고 이런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간간이 들려오는 중국 동포들의 '사기행위'가 이러한 심리에서 비롯된 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동포들과 관련단체들은 1948년 이전에 해외로 나간 중국, 러시아 동포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재외동포법을 개정해 자유왕래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유씨와 진씨는 "돈 많이 버는 재미동포만 동포이고 돈 없는 중국동포는 동포가 아니냐"며 "현행법대로라면 돈 많이 벌고 나중에 태어난 자식만 자식이라는 논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국이 경제 발전하느라 고생할 때 어디 있다가 이제 와서 돈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거냐고 한국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주와 연해주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어나간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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