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권영길 대표는 '평등과 평화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벌써 대선 '재수생'이 된 권영길 후보. 하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노동자의 50%를 넘어서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더욱이 분단체제가 공고화돼 평화정착과 통일의 꿈이 요원한 현실에서 '평등과 평화의 대통령'은 여전히 새롭다. 보수 일색의 정치권에서 그는 유일하게 노동자층을 지지기반으로 자신의 색깔은 '진보'임을 분명히하고 있는 유일 후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었음에도 민주노총 조합원 수에도 모자라는 30만표 남짓밖에 얻지 못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8.1%를 득표해 일약 제3당으로 부상했던 성과도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이른바 '선거공영제'가 현실화 될 경우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권 후보가 보수정치의 장벽을 넘어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이뤄갈지 관심사다. 병원사업장에 경찰병력이 투입된 11일 오전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그를 만났다.

노동자 계급투표 않으면 보수정치권 경멸 면치 못해

▷ 후보 선정과 동시에 선거공영제라는 벽에 부딪혔다. 16대 대통령선거 거부 운동까지
언급했는데 선거공영제의 문제점과 앞으로 대응계획은.


"선거공영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다.

그 안대로 법제화될 경우 민주노동당으로선 선거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기탁금이 20억원으로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설혹 20억원이 있어 등록한다 해도 민주노동당 후보는 선거운동을 할 방법이 없어진다.

선거공영제는 거의 98%를 미디어 선거로 치르게 해놓았는데 미디어 홍보에 참여할 수 없다면 대중유세도 금지된 상황에서 국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원시적인 선거운동밖에는 할 게 없다. 선거운동을 2%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에는 비판적이던 제도언론도 잠잠해지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관심을 선거기탁금으로 몰아 20억원을 10억원 정도로 낮추면서 여론을 잠재우고 원내교섭단체 정당에만 부여된 특혜를 그냥 법제화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투쟁강도를 더 높이고 좀더 조직적인 투쟁을 준비해나갈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단체와 적극적으로 연대해 이 문제를 사회여론화해 나갈 것이다."

▷ 지난 대통령선거에 이어 두 번째 출마다.
지난 대선과 견줄 때 이번 선거의 의미와 목표는.

"지난 97년은 당의 후보가 아니었다.

국민승리21은 선거를 위해 급조한 진보진영의 정치적 조직체였다. 당시 30만표밖에 얻지 못했지만 대선 이후에 진보정당을 건설하자는 것이 선거 참여의 목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97년 대선 이후 어려운 조건 속에서 성과를 모으고 한계를 극복하면서 창당한 민주노동당의 후보로 출마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여전히 극복해야 할 문제는 지역감정과 사표심리다. 지역감정은 올해도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영남표를 결집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자극할 것이고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다른 지역표도 결집하려 할 것이다. 사표심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퇴색할 징조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찍은 표는 부패한 정치에 대해 대안을 찾으려는 의미 있는 표다.

지역감정과 사표심리를 극복하고 있는 이런 표를 조직하는 것에 선거운동을 집중할 것이다. 더구나 조직된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투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될 때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이게 가능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진보진영, 대선 공동대응방안 찾아야…후보단일화는 그 다음 문제

▷ 하지만 지난 대선에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면서도 민주노총 조합원수에도
미치지 못한 약 30만표(1.2%)를 얻었다. 올해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97년 대선 당시 자기 조합원들 표도 다 얻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 표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많았다.

민주노동당으로 참여한 2000년 총선에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표를 집중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변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조직력을 노동자들의 표를 얻는데 집중할 것이다. 조합원들이 지역감정과 사표심리를 극복 못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정치적 모멸로 나타났다. 투표이후 정밀분석을 거치면 노동자들의 투표성향이 자세히 드러난다. 보수정치권은 노동자들이 찍어준 표를 보며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도 멀었다'며 경멸한다.

현장에서는 투쟁을 전개하다 탄압 받고 선거에서는 표 찍어주다 경멸당한다. 이런 수모 이제는 그만 당해야 한다. 조직노동자들도 서서히 이를 깨달아가고 있다. 이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 올해 대선이 다자간 대결구도로 가고 있다.
쟁점형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며 처음 출마하는 후보도 많다.
민주노동당의 선거전략은 무엇인가.

"후보는 많아도 새로운 인물이 없다.

출마회수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름만 바꿔왔지 수구보수세력을 대변해 왔다. 민주당도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하며 유지해온 정당이다. 인물이 바뀌어도 보수적인 색깔에는 변함이 없다. 정몽준 후보도 재벌 출신이다. 전혀 새로운 세력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자 중심으로 건설된 최초이자 유일한 정당이다. 이는 새로운 역사적 의미이며 한국정당발전에 획기적인 사안이다. 다른 후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선거쟁점은 평등과 통일 세상을 중심으로 가져갈 것이다.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지 않고는 빈부격차를 극복할 수 없다. 이것을 내세울 수 있는 후보는 민주노동당 밖에 없다. 또한 서민생활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부유세를 만들고 병역제도도 점차적으로 모병제로 바꿔나갈 것이다. 정책대결에서는 다른 후보들과 확연하게 구별될 것이다"

▷ 지난 대선과 비교할 때 이번 선거 공약은 실현가능성을 주요하게 고민했다는 평가다. 대선공약의 변화가 갖는 의미는.

"당은 구체적인 정책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민주노동당은 창당이후 쭉 그렇게 활동해 왔다.

민주노동당이 뜬구름 잡는 정당이라는 이야기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현가능성도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정당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공약도 새롭게 만든 게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마련된 100대 공약을 구체화하고 민주노동당 활동 속에서 다듬어 온 것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보다 구체적인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싸워온 결과물이다."

▷ 당원들 사이에서 대선 열기가 뜨지 않고 있는데.

"후보선출 투표율과 선출대회 참석 당원들이 예상보다 적었다.

단독후보에 대한 찬반투표형식이었고 시기도 적절하지 못했던 점 등 당원들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본격화되고 당의 사활이 걸린 상황이 되면 당원들도 달라질 것이다. 당도 최우선적으로 당원들이 신명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

▷ 8월말로 계획됐던 '진보진영후보단일화를 위한 범국민추진본부'(범추)
결성에 실패했다. 앞으로 올해 대선에서 범진보진영의 공동대응을
어떻게 모색해 나갈 계획인가.


"이번 대선에서 범진보진영의 공동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대선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공동으로 정리하고 이를 위해 어떻게 공동 대응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후보단일화문제는 그 이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번 진보진영간 논의에서는 후보단일화를 앞세우다보니 관심이 그쪽으로 모아졌다. 이제는 공동대응을 중심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 그러다가 다른 후보들이 나오면 공동대응을 바탕으로 후보단일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또 후보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

▷ 한국노총이 독자정당을 창당하려 한다. 이에 대한 입장은?

"한국노총이 보수정당과 정책연합을 단절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해 주길 바란다.

독자정당이 그 길로 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창당 이후의 문제는 지금 언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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