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가 탄생한 지도 벌써 1년 반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를 돌이켜 볼 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게 현실이다. 대공장 노조들의 산별 전환은 감감소식이고, 산별노조 건설과 동시 진행하려던 연맹해체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과도기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가운데 금속산업연맹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직가입 계획을 또 기약도 없이 연기해야 할 처지에 있으며 연맹도 부위원장선거 미등록 사태에서 보듯 향후 전망과 관련해 심각한 고민에 맞닥뜨려 있다.

상황에 여기에 이르자 연맹은 오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금속노조 지회장들과 연맹산하 기업별노조 간부들이 참여하는 수련회를 갖기로 하는 등 모처럼 연맹과 금속노조의 '진로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대공장 노조들의 '결단'이 없는 한 연맹과 금속노조가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국내 최대 기업별노조인 현대자동차노조가 오는 11월 22일 잡아놓은 산별 전환투표가 주목받고 있다. 그 여파가 이후 대공장 노조의 산별 전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일정에 오른 현대차노조의 산별전환 투표를 계기로 금속노조와 금속산별연맹의 현주소와 과제를 진단해 봤다.


지난해 2월 초 108개 사업장 3만800명 조합원으로 닻을 올린 금속노조. 사업장 수로만 보면 200여개 금속산업연맹 소속 사업장의 절반 이상을 포괄하고 있지만, 조합원 수를 보면 연맹 전체 17만여명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따라서 미전환 노조들의 조직형태 변경이란 과제를 풀기 위해 출범 당시부터 금속노조는 사실상 연맹 해산을 의미하는 금속노조의 '민주노총 직가입'을 결의하되, 그 시기를 차기 지도부가 임기를 시작하는 같은해 9월까지 유보하는 경과규정을 규약에 명시했다. 이는 무슨 일이 있든 '미완의 과도기'는 1기 지도부로 끝맺고 조합원 직선제로 같은해 10월 선출되는 2기 지도부부터는 명실공히 금속산별노조를 건설하겠다는 연맹과 금속노조 지도부의 다부진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 시한인 지난해 9월이 임박해도 산별 전환한다는 대공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금속노조의 조직규모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노조는 다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격론 끝에 상급단체 변경에 관한 경과규정을 1년 유보할 수밖에 없었으며 민주노총 직가입 경과규정은 "2002년 10월 1일부로 민주노총에 가입한다"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금속노조-연맹 과도체제 모두가 '헉헉'
…출로는 대공장 노조 산별전환 뿐

■ 좀 채 벗어나기 힘든 '과도기'


현 금속노조 조직규모는 163개 지회 3만6,000여명으로 출범당시보다 다소 늘긴 했으나 의미를 둘 만한 수치는 아니다. 금속노조 출범 이후 신규노조는 금속노조로 가입시킨다는 연맹 방침에 힘입어 신규가입 노조가 25개 사업장 늘었지만 기존 연맹산하에서 조직형태를 변경한 사업장은 23개 노조 6,571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20여개 사업장에서 금속노조를 탈퇴하거나 노조 자체가 해산되기도 했다.

연맹 소속으로 남은 노조는 현재 83개, 12만6,000여명에 이른다. 더구나 이들 미전환 노조들 가운데 1000명 이상 사업장 11곳이 조합원 11만명으로, 연맹 전체 조합원의 87%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3개 노조만으로도 조합원수는 8만명에 이른다. 나머지는 조직력이 취약한 중소규모가 대부분이다. 이들 주요 미전환 조직은 연맹이 산별전환 단계에 들어섬과 동시에 약화될 수밖에 없는 지도력 범위마저도 벗어나 있는 현실이다.

금속노조는 오는 9월말 다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민주노총 직가입이 여전히 어려운 사실을 재확인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결국 금속노조는 상급단체 경과규정 자체를 삭제하고 상급단체 가입 및 탈퇴를 대의원대회 결의사항으로 남겨놓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자료사진 = 금속노조 전진대회
금속노조 이승필 초대 위원장은 금속노조 출범과 함께 "개미군단의 힘으로 산별노조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개미군단' 상태를 벗어나는 게 시급하다.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 가운데 1000명 이상의 사업장은 4개 1만2,841명에 불과하며 116개에 이르는 사업장이 200명 이하의 중소규모다. 50명 이하 사업장도 48개에 이른다.

지금까지 중소사업장의 결집은 산별노조의 내부 조직력과 단결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비슷한 규모의 사업장들이 지부내 단결을 돈독히 하고
조직력을 높이는 데 장점을 발휘했다.
하지만 전 산업적인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 11월 산별전환 투표…최대규모, 업종·지역 파급력 '주목'

■ 현 금속노조-금속연맹 한계 노정


금속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지부별 교섭을 통해 사용자단체 구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산별협약을 관철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 이에 따라 100여개 이상 사업장에서 기본협약을 관철시키는 성과를 낳기도 했지만 금속노조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두산중공업, 삼호중공업, 대동공업 등 오히려 대기업쪽에서는 기본협약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

심상정 사무처장은 "이는 현재의 조직규모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물리적 한계"라며 전 산업적인 산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 연맹규모로 산별노조 역량이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임단협이 6개월 이상 장기화되면서 잦은 파업과 상경투쟁으로 인해 개별사업장의 조직적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다면 한다'는 구호로 1년 반을 달려온 금속노조도 이제 현실의 벽 앞에서 주춤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금속노조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동안 연맹도 지도력 부재에 시달렸다.

미전환 조직 가운데 대공장 노조들에는 연맹 지도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나머지 노조들은 조직력이 심각히 붕괴되거나 아예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특히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연맹의 주도적 역할은 크게 축소돼 시기 집중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또 금속노조 지역지부들이 탄생하면서 연맹 지역본부들이 유명무실해지거나 거의 기능을 상실해 지역차원의 연맹 사업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연맹 소속 노조들은 "금속노조가 너무 앞서간다"며 불평하고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은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서로 비판하면서 두 그룹간 간극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차원에서 임단협 공동투쟁본부를 꾸려도 단일한 지침으로 참가하는 금속노조 사업장들과 연맹 산하 노조들간 의견조율이 쉽지 않아 심한 경우 공동투쟁 자체가 성사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부위원장 선거가 두 차례나 미등록 사태를 맞으면서 연맹은 산하노조들과 금속노조 사업장들이 모두 모여 현 상황을 타개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수련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 현대차 산별전환투표가 주목받는 이유

그렇다고 위기에 대한 체감지수가 연맹만의 것은 아니다.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고 있는 대공장 노조들도 기업별체계에 한계를 느끼기는 마찬가지. IMF 위기 이후 조합원들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기보다는 '적응'하고 있으며 고용돼 있는 동안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임금협상에 매달린다. 노조 지도부도 차기 선거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조직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노조의 한 간부는 "조합원들의 관심이 임금이나 후생복지에만 맞춰져 있고 노조도 기업 내에서 이런 문제들 밖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사회개혁 투쟁 등 사업장 밖으로 전혀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97년과 98년 같은 상황이 재현될 때 기업별노조 차원의 조직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산별노조체계를 통해 전산업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투쟁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대자동차노조의 오는 11월 산별전환 투표에 대한 연맹 안팎의 관심은 '국내 최대'라는 규모에서 뿐 아니라, 금속노조운동에서 차지하는 조직의 비중, 그리고 자동차 업종 내부는 물론, 지역적 차원의 파급력 역시 그 무엇에 비할 게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료사진 = 금속노조 전진대회
현대자동차노조는 오는 11월 22일 산별전환 투표를 위해 이미 교육위원 상대 교육을 마치고 9일부터 11월 15일까지 두 달 동안 조합원들에 대한 산별노조 집중교육에 들어간다. 또 현장 제 조직 공청회, 대의원과 소의원 공청회, 조합원 토론회 등을 잇따라 열어 현장에서 산별 전환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해 간다는 계획이다.

물론 현장 제 조직들의 동의, 조합원들의 기업별 의식극복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현대차노조 집행부는 산별전환 성사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연맹과 금속노조, 대공장노조에게 더 이상 '위기'는 낯설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산별노조'라는 처방
역시 오래 전부터 누차 강조되고 확인돼 왔다.

이제 연맹과 금속노조, 대공장노조들이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전환 투표를
계기로 이를 어떻게 현실화 해 나가는지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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