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 불신임' 문제를 둘러싼 서울지하철노조 배일도 집행부와 '4개 지부 공동투쟁본부'간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배일도 집행부는 최근 열린 집행회의에서 4개 지부 공투본 활동을 '반조직적 행위'로 규정하고 공투본에 참여하고 있는 4개 지부 간부 8명의 전임해제를 추진키로 하는 등 강경 입장을 밝혔다. 4개 지부 공투본도 여기에 맞서 26일 발족식을 갖고 '집행부 총사퇴, 총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조합원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배일도 집행부 "4개 지부 공투본, '반조직적 행위'" 전임해제 경고

■ 발단 = 현 지하철노조 내부갈등은 4개 지부 공투본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민주파'의 현 배일도 집행부에 대한 누적된 불신에서 비롯됐다.

그 출발은 지난달 15일 차량지부 지축정비지회가 포문을 연 '배일도 위원장 불신임 투쟁.'
당시 지축정비지회는 △ 민주노총 총파업을 앞두고 서울시투자기관노조의 '무쟁의 선언'을 주도하고 △ 부결됐던 지난해 임단협 협상을 위원장에 재당선된 뒤 직권조인하고 협약서 인준투표를 거부했으며 △ 대의원대회에서 불참 결정한 서울모델에 참여한 것 등 배일도 집행부의 조직운영 전반을 문제삼고 나섰다.

지축정비는 "서울지하철노조가 위원장 한사람의 결정만이 유효한 조직으로 전락해 버렸다"며 배일도 위원장을 겨냥했다.

이런 지축정비지회의 불신임 움직임과는 별도로 올 임금협상과 관련한 대의원들의 '불만'이 간헐적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 7월 3일 쟁의발생 결의를 위한 대의원대회에선 지난 2월 행자부 지침 철회투쟁 당시 쟁의행위 결의에도 불구하고 현 집행부가 결국 행자부 지침을 수용한 것과 관련, "임단협을 앞두고 쟁의행위를 결의해도 집행부가 실제 투쟁할 의지가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 경과 = 이처럼 부분적 양상을 보이던 지하철노조의 내부 갈등은 지난달 7월 29일 체결한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부결'되면서 전면화되기에 이르렀다.

배일도 위원장은 문제의 7·29잠정합의는 '가조인'으로, 규약 86조 '협약의 인준'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부결됐다고 해서 사퇴할 이유는 없는 만큼 재교섭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역무, 승무, 차량, 기술 등 4개 지부는 현 규약에 장점합의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그 합의안에 대한 표결은 곧 인준투표의 효력을 갖는다며 부결됐으니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7·29잠정합의안 부결을 계기로 당초 지축정비지회를 중심으로 한 불신임 요구가 4개 지부의 입장으로 확대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대립의 접점 역시 배일도 집행부에 대한 전반적 '불신'에서 잠정합의안의 법적 효력과 유권해석 문제, 즉 규약 86조(협약의 인준- 협약 안이 참석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할 시에는 집행위원 이상 전원이 불신임된 것으로 본다)문제로 압축된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일도 집행부는 지난 22∼23일 제14차 집행회의를 열고 4개 지부 공동투쟁본부를 '사이비 민주노동운동', '반조직적 행위'로 규정하고는 공투본의 핵심관계자들에게 전임해제 등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배일보 집행부 역시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4개 지부 공동투쟁본부는 26일 2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예정대로 공식 발족식을 갖고, '집행부 총사퇴, 총선거'를 요구하며 현장 활동에 나섰다 이미 차량지부와 차량지부 지축정비지회는 각각 군자기지, 공사 본사(사당)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4개 지부 공투본 "26일 발족식…불신임 투쟁 확대" 조합원 서명운동 돌입

■ 전망 = 이런 대치상황 속에서 지난 23일 오후 서울지하철공사 노사가 다시금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는 오는 29일에서 31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배일도 집행부와 4개 지부 공투본의 갈등은 이번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잠정합의안이 부결 될 경우, 배일도 위원장은 재교섭을 또 다시 주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연거푸 부결'이란 상황은 배 위원장 지도력 훼손 등 거취에 상당한 압력요인으로 될 것이 예상된다. 4개 지부 공투본은 '재부결' 국면을 활용, '집행부 총사퇴, 총선거' 투쟁을 가일층 확대해 나갈 것이 틀림없다.

반면, 잠정합의안이 가결될 경우, 4개 지부 공투본의 불신임 투쟁은 지속되겠지만, 그 파급력은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배일도 집행부쪽에 유리한 국면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와 별개로 4개 지부 전임해제 등 배일도 집행부가 '강수'로 대응해 나간다면 이른바 '민주파' 진영의 대대적인 반발이 예상되며, 갈등상은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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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와같은 지하철 노조 내부 갈등을 해소할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노조 안팎에선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조 한 관계자는 "이번 갈등은 노동운동에 대한 배일도 위원장과 이른바 '민주파'의 노선 차이가 극명한 대립점을 형성한 것"이라며 "조합원의 선택 등 '힘의 논리'에 따라 사태가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차량지부의 한 대의원은 "3대의 걸친 배일도 위원장의 잠정합의안을 보면 퇴직금누진제 폐지, 인원감축 등 '노사협조주의'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며 "조합원의 선택에도 규약을 자의적으로 해석,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배일도 위원장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서울지하철노조의 두 진영은 지금 한 궤도 위에서 마주보고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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