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지난 24일 경기도 양평 바탕골 예술관. 대부분 가족단위인 200여명의 관람객들이 직접 도자기를 빚기도 하고 한지공예에도 참여하면서 여유있는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소극장과 미술관, 도자기 공방, 공작실 등을 갖추고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 1999년 7월문을 연 이후 현재 주말이면 평균 400~600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중 70~80%가 가족단위로 숙박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올 7월엔 인근에 숙박시설까지 마련했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될 경우 이같은 가족중심의 문화프로그램은 더욱더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연인들이 주관객이었던 공연이나 영화도 최근들어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가족관람객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마련하고 있는 주말 우리민속 한마당 공연엔 요즘 가족관람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박물관측은 토요일 관객이 증가하면서 한달에 2~3회였던 공연을6~8회로 늘렸다.

연극계에선 다소 할인된 가격의 가족패키지 티켓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또 이제까지의 가족극이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었다면 최근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수준높은 가족극들이 많이 등장했다.

가족관객들의 비중이 높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연시간과 장소도 옮겨가고 있다.

예술의 전당 관계자는 “금요일 저녁공연과 토요일·일요일의 오전·낮 공연이 활성화될 전망”이라며 “이제까진 방학 위주로 가족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앞으론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말 야외로 나가는 가족들이 많아지면서 장기적으론 양평의 바탕골 예술관이나 가족극 중심의 연극을 하는 양주의 미추산방 같은 야외공연장이 늘어날 것으로 이 관계자는 내다봤다.

주말 가족들이 나들이를 하면서 가볼 수 있는 자동차 극장도 경기도 일대에만 스무곳이 넘게 생겼다. 특히 1999년 문을 연 남양주의 씨티존 21자동차 극장의 경우 인라인 하키와 농구, 서바이벌 게임 등을 할 수 있는 체육시설과 도자기 공방 등을 마련하면서 가족 단위 관객이 70% 정도에 이르고 있다.

사회의 흐름을 발빠르게 반영하는 각 문화센터도 이러한 대세에 동참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사회 전체적인 화두가 되면서 각 백화점들은 최근주5일제를 겨냥한 가족단위의 주말강좌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백화점마다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코스를 마련하는가 하면 주말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유아강좌 코너도 대폭 늘렸다.

아빠랑 엄마랑 체조교실, 아빠랑 엄마랑 베이비 마사지, 아빠랑 함께 EQ·IQ향상 교육놀이 등의 강좌가등장해 주로 평일 낮 주부와 아이들 대상이던 문화센터가 주말 온가족으로확대된 셈이다. 이밖에도 온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가족 건강요가가생기는가 하면 부부가 함께 하는 스포츠댄스, 일요바둑교실, 요리강좌 등도접수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가족중심의 문화가 확산되고 다양해진다는 면에서 주5일 근무제자체가 바람직스럽기는 하지만 문제점 역시 적지 않다는 게 여가전문가, 가족문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싼 값으로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지난 6월 경향신문과 여성부가 실시한 주5일제로 인한 가족생활 변화에 대한 공동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들과 여가활동을 보내는데 가장큰 걸림돌로 ‘경제적인 부담’ (32.5%)을 꼽아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여가문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과 함께 여가생활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필요한 시설로는 인근공원(46%)이 가장 많이 꼽혔고 종합스포츠센터(14.9%), 테마파크(9.5%), 종합문화센터(7.2%) 등의 순이었다. 이와는 별개로 주 5일 근무제로 시간여유가 늘어나면서 계층별로 문화상품이 분화될 경우 상류층과 영세·서민층간의 문화적 위화감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갑자기 늘어난 빈 시간을 채울 콘텐츠가 빈약한 것도 큰 문제다. 지난달 출범한 여가문화학회가 금융권의 주5일제 실시 한달을 맞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주말에 쉰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은 크지만 “할 게 없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김정운 여가문화학회 총무(명지대 여가정보학과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잘 놀지를 못한다”며 “돈보다는 프로그램 부재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입을 위해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10대와 일 중독증에 걸릴 만큼 일하는 중·장년기, 그리고 괴로울 만큼 갑자기 한가해지는 퇴직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제까지 진정한 여가는 없었다.

그러나 주5일 근무제 본격실시를 앞두고 우리 사회에서 여가가 일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서고 있는 만큼 여가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범사회적인 논의 또한 보다 활발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