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이 지난달 개혁특위를 구성했다. '위기'를 돌파할 청사진 마련에 나선 것이다.

나름의 포부도 크다. 특위 참가자들은 "뭔가 작품을 만들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혁특위를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에선 "글쎄"하는 관망이 느껴진다. '개혁' 구호가 식상하기 때문일까? 한국노총 개혁특위 과제와 진행 추이를 살펴봤다. ]

■ "변해야 한다" 청사진 마련 분주…문제는 실천

조합원 아직 '우려반 기대반' 관망 분위기…'현장' 요구 구현할 지도부 의지가 관건

"개혁 한, 두번 해봤습니까?"

지난달 한국노총이 구성한 개혁특위에 대해 조합원들의 반응이 썰렁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노총이 개혁을 위한 기구 구성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부문 노조의 한 위원장은 "주변 위원장들도 아직까지는 아무도 개혁을 기대하지 않는다. 지도부가 산별연맹 입장들을 조정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못하면서 개혁을 하겠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면서 "현안문제만 잘 해결해도 개혁"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유보적인 관망 분위기가 주류라고 할 수 있다. 현장과 접촉이 잦은 한국노총 조직본부 실무진들은 조합원들이 개혁특위에 대한 기대치가 예전보다는 높다고도 했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노총의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위 위원인 공공서비스연맹 최동민 국장은 "단위노조 위원장들 사이에 '이번에도 포장용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층 간부들이 특위 활동에 대해 긴장을 갖고 있고, 특위 위원들이 의욕적인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개혁기구에 대해 기대와 회의가 교차하는 데는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있었으나 실천적인 후속작업이 없었던 탓이 크다.

개혁특위와 유사한 활동을 벌인 대표적 사례로는 지난 94년 구성됐던 '노총발전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노발특위)'. 당시 박종근 위원장을 비롯해 항운노조, 금융노조, 해상노련, 화학노련, 금속노련, 연합노련, 고무산업노련 위원장 등이 참여한 노발특위는4차에 걸친 회의와 합숙을 통해 시안을 마련하고, 두 차례 토론회 등에서 발전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노발특위는 '민주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노동조합주의'를 기조로 세우고, △정치민주주의 추구 △경제민주주의 실현·경제제도 개혁 등 10대 과제를 제시하고 정책·제도개선 활동과 조직의 확대·강화, 정치활동의 강화 등 각 부문별 활동방침도 밝혔다. 노발특위가 제시한 10대 과제와 부문별 활동방침은 당시 유의미한 문제제기였으나 이후 실천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노발특위는 76쪽에 이르는 '2000년대를 대비한 노총의 운동기조와 활동방침'이란 소책자를 발간하는 게 전부였다.

■ 과거 실패 결국 '실천이 문제'

당시 노발특위가 구성된 것은 개혁의 필요성보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가 93년 결성, 총연맹이 양자구도로 형성되면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조직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또 전노대와 차별성을 갖고 새로운 노동운동 방향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93년 임금가이드라인과 관련한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 대한 산하조직들의 반발과 조직이탈 현상이 위기 위식을 높인 이유이기도 했다.

노발특위 외에도 사무총국 차원에서 개혁기구들이 구성돼 산발적으로 활동을 벌였으나, 지속성을 갖지는 못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개혁특위를 구성하면서 당시 노발특위가 실패한 원인으로 특위 위원들의 개혁성, 지도부의 개혁의지, 조직안팎의 신뢰 부족 등을 지목했다.

이번 개혁특위 구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아래로부터'의 개혁요구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강화와 노조 조직률 하락 등 노동계는 지난 몇 년간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한국노총에게는 특히 지난해 말 발생한 몇몇 사건들은 강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지난해 말 불거진 '3대 비리 의혹'과 올해 초 철도노조의 상급단체 변경 움직임 등은 한국노총에겐 말그대로 '사건'이었다.

중앙연구원, 산업안전본부, 중앙교육원의 재정비리 의혹과 관련해 올해 초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는 노총 개혁의 목소리가 높게 울려퍼졌고,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는 앞 다투어 '개혁'을 공약했다. 이남순 위원장은 '개혁기구' 구성을 약속했다.

위원장 선거 직후 벌어진 철도·가스·발전노조의 파업은 한국노총의 향후 활동방향을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한국노총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철도·가스노조의 파업을 지원했으나 철도·가스노조 조합원들로부터 "투쟁보다 협상을 중심에 뒀다"는 비판과 함께 상급단체 변경 요구라는 막다른 상황을 맞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모태라고 할 철도노조에서 상급단체 변경요구가 나온다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가스노조는 결국 민주노총 공공연맹으로 상급단체를 바꿨다. 당시 철도노조 파업을 지원하면서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뜨거운 투쟁열기가 한국노총을 변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무총국의 간부들 사이에선 우울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또 이번 6·13 지방선거에선 지방본부와 한국노총의 관계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방본부와 연맹별로 제각각 성향에 따라 정당을 선택, 지방선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한국노총이 중재에 나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통한 민주노총의 '정치적 성공'은 한국노총의 이런 문제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과 상황을 맞으면서 개혁기구가 구성된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개혁특위가 과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현장에서 개혁과제를 만들겠다'는 태도다. 과거의 개혁기구는 위원들이 논의 속에서 과제를 도출했다면, 이번엔 대·내외 인터뷰,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개혁과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사무총국, 연맹, 지방본부 간부와 외부 노동전문가 등 특위의 참여폭이 넓다는 것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민변 김선수 사무총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원보 소장, 참여연대 박원순 집행위원장, 학계에서 김대환 교수 등도 외부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외부의 '쓴소리'를 듣겠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지난달 5일 이남순 위원장이 산별대표자회의에서 개혁특위 구성을 인준하며 "개혁특위에서 결의한 내용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남순 위원장은 통상 총연맹 위원장이 맡아오던 개혁기구의 수장직을 이례적으로 자동차노련 강성천 위원장과 금융노조 이용득 위원장에게 넘겼다.

개혁특위는 지난달 24일 2차 회의에서 특위 체계를 운동기조분과, 노동조직분과, 재정분과, 의식·관행분과로 나눴다. 활동방향으로는 △대국민 신뢰 확보와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회연대 강화 △의사결정과 사업추진의 민주성·투명성·참여 확대 △조직규율 확립과 조직역량 집중 △유사조직 통폐합과 산별노조 건설 및 노동운동 통일 △재정 자립 강화와 자주성 확보 등을 내세웠다.

■ "무엇보다 지도부 실천의지가 중요"

개혁특위가 이전 개혁기구에 비해 체계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가운데, 조합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지도부가 적극적인 실천의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정식 기획조정실 본부장은 "조합원들의 신뢰가 확보돼야 참여가 담보되고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며 "즉각 실천할 수 있는 단기과제를 발굴해 지도부에 제출할 계획이며, 지도부는 실천을 통해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며칠 전에야 개혁특위가 구성된 사실을 알았다"는 삼아약품노조 최현환 위원장은 "개혁특위의 취지는 좋은 것 같은데 용두사미가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개혁특위가 실패할 경우 더 혼란스러울 수 있을 만큼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혁주체의 의지와 기득권까지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혁 전망에 대해 비관적인 한 공공부문노조 위원장은 "특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추진세력보다 중요한 게 절대다수의 동조세력"이라며 "연맹 위원장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남순 위원장 등 지도부는 개혁특위에 모든 전권을 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혁특위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합원들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가 담긴 개혁과제가 지도부에게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 분위기는 이번에 도출되는 개혁과제를 지도부가 외면한다면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개혁을 촉구했는데도 달라진 게 없을 경우 불신의 골만 깊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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