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일주일 가운데 5일을 일하고 이틀을 쉬는 주5일제가 도입된 지 한 달이 됐다.
이런 주5일제 도입은 은행원들의 여가 시간을 늘렸다.

그림 = 금융노조 홈페이지 '금노만평'
여가 시간의 증가는 은행원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하지만, 아직은 이를 어떻게 활용한 것인가에 대한 대안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매주 거듭되는 '이틀'의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개인의 삶에만 관련된 것이 아닌 가족생활 전체에 영향을 주면서 결국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여가 문화가 볼거리나 먹거리를 소비하는 방식에 치중돼 있어 노동자가 생산적인 방식으로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여가 콘텐츠를 생성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여가, 노동생산성 향상과 직결…'알차게 보내기' 방법 제시해야

■ 갑자기(?) 생긴 연휴, 일단 '가족과 함께'

K은행 수원지점 박아무개 과장(38)은 네 번의 주말을 말 그대로 '재미있게' 보냈다. 박 과장은 한 주는 서해안 바닷가에서, 한 주는 동네 뒷산에, 또 한 주는 계곡에서 발을 담그며 더위를 피했다.

박 과장은 "계속 이렇게 놀러 다닐 수는 없죠. 처음이니까 가족들이 주말에 대한 기대가 크기도해서 마음먹고 다닌 거죠"라며 7월 한 달은 주5일제 때문에 가계부에 구멍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앞으로 짜임새 있고 경제적인 주말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한 달 중 일주일에 한 번은 외식, 나머지는 철도박물관이든지 도서관에서 자녀들과 함께 보내겠다는 것. 또 진급심사를 앞두고 있어 이에 대한 준비도 주말을 이용할 계획이다.

박 과장은 주5일제 도입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마음의 여유로 들고 있다. 박 과장은 "사람 사는 것 같아요. 토요일도 퇴근하면 오후 5시가 넘으니까 일요일에는 잠자기 바쁘죠. 물론 토요일에 할 일을 금요일까지 처리해야 하니까 업무 부담이 있긴 하지만 주말을 편안하게 쉴 수 있어 좋아요"라고 말한다.

또 다른 K은행 동숭동 지점에서 일하는 기혼 여성인 박 아무개씨(36)는 아이들과 보내는 토요일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이용할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다. 박 씨는 일단 거주지 구청에 문의를 해서 토요일 자녀와 어머니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알아본 후 매주 토요일마다 구립도서관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전문 강사 지도에 따른 책읽기 방법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도서관에 가는 습관을 들이고 본인도 직장 탓에 멀리했던 책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K은행 성수2가 지점장인 서아무개 지점장도 관리자로서 주5일제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서 지점장은 "점포 내 직원들이 주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젊은 직원들이 자기계발에 적극적이다"고 말했다. 이 은행 행원통신망에는 외국어공부, 여행, 등산, 스포츠 활동 등을 함께 할 모임을 만들자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주5일제 이후에 생산성과 일의 집중도가 눈에 띠게 늘었다고 평가했다. 서 지점장은 "이전엔 토요일 업무가 상당히 다양했다. 문을 닫는 시간은 1시 30분이었지만 대출 처리, 고객 관리 등의 업무를 하다보면 평일과 거의 다름없이 퇴근했다"며 "주 5일제 이후 토요일 업무를 주중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업무의 집중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 지점장은 그러나 주5일제 실시에 대한 중소기업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주5일제 도입을 찬성하는 것과는 별개로 중소기업체가 받아들이기 힘든 사정도 충분히 이유가 있다"며 "중소기업체 치고 경쟁력을 제대로 갖춘 회사가 드문데다 토요휴무까지 겹치니 불만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전한다. 서 지점장은 "주5일제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는 한 중소기업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족과 함께'서부터 승진시험준비 등 다양하나 정형 없어

■ 노조차원 여가활용 인프라 개발 시급

금융노조가 지난 5월 23일 우리나라 산업 최초로 주5일제를 실시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것은 '사건'이었다. 금융 노동자의 숙원인 이틀 연휴가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주 5일제 도입이 한 달이 넘었지만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것에는 다소 소홀한 것이 아니었냐는 지적이다.

주5일제로 생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에 대해 금융노조도 함께 고민하고 조합원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노조 백대진 교육문화국 부국장은 "금융노조가 주5일제 실시에 따른 노동자에 걸맞는 여가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며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1박 2일 여행을 가더라도 생태기행, 통일기행, 역사바로알기 기행 등 노동자에 걸맞는 프로그램과 컨텐츠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 개편되는 홈페이지에는 문화 정보를 대폭 늘린다.

금융노조는 이를 위해 앞으로 3개월간 주5일 근무제에 따른 금융노동자의 여가생활 및 생활패턴에 대한 연구를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할 계획이다.

이 연구에서 금융노동자가 연휴를 보내는 방법, 주5일제 노동에 따른 노동자의 의식변화 등을 통해 삶의 양식이 과연 어떻게 바뀌어 나가는지 알아볼 작정이라고 한다.

백대진 부국장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자가 누려야 하는 여가생활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내년 임금교섭에도 조사결과를 적극 반영키로 했다.

그림 = 금융노조 홈페이지 '금노만평'
명지대학교 여가정보학과 김정운 교수는 "여가문화가 노동과 분리된 남는 시간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여가문화를 잘 살리는 것은 노동생산성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이어 "여가 문화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을 경우 분명히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5일제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기본 명제에 공감한다면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정부와 사회, 노조가 함께 고민하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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