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일이 힘들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보더라도 여름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인정할만한 사람들이 있다.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거리에서 매연으로 호흡하는 환경미화원,
끝없이 이어지는 자갈밭 철로 위의 철도보선원 등이 그들이다.
여름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삶의 현장을 찾았다.
두 개의 전기로가 섭씨 1,500도의 쇳물을 연신 쏟아낸다.

이마 위로 땀이 맺히더니 이내 온 몸이 흠씬 젖는다.
쇳물은 쇳물통으로 옮겨 금형에 부어지고 다시 고속으로 회전하며 성난 열기를 내뿜는다.
금형에서 나온 제품도 주물기계 옆에서 마지막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

자동차 엔진부품을 생산하는 충북 신탄진의 대한이연 주물라인.
작업장을 방문한 지난달 29일은 연일 30도를 넘나들던 더위가 구름 뒤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장 안은 숨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쇳물이 뿜어내는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노동자들은 굵은 땀방울을 비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한 여름 작업장 섭씨 50도…열사병 위험

■ 얼음주머니 1시간이면 '온수주머니'로


쇠를 녹여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주물작업은 1년 내내 고된 일이지만 작업장 온도가 5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은 주물노동자들을 탈진직전 한계상황으로 내몬다.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열기만이 아니다. 집진기가 미처 빨아들이지 못한 주물용 모래들도 열기를 품고 작업장을 날아다닌다.

노동자들은 마스크와 보안경을 쓰고 얇은 작업복에 의지한 채 조기출근과 야근으로 12시간을 열기와 싸운다. 올해부터 지급되는 얼음조끼는 한시간만에 온수주머니가 돼 맥없이 늘어진다.

유쌍수(46 주조과)씨는
"12시간씩 일하면서 땀을 하도 많이 흘리고 물을 많이 먹으니까
저녁에 집에 가면 밥맛이 없어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고 말한다.

검게 그을린 유씨의 작업복은 곳곳이 구멍 투성이다.
"일하다 불똥이 튀면서 옷을 뚫고 살을 태우기 일쑤다."
그러나 더위 때문에 두꺼운 작업복을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회사 노조 김용주 지회장은 "그나마 95년부터 쇳물을 기계가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외국인노동자와 병역특례노동자들이 주물통을 직접 들고 운반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운반 중에 쇳물이 튀는 사고도 잦았다고 한다.

정기 휴식 보장과 작업시간 조절 절실

■ 작업 마치면 탈진으로 식욕도 잃어


김 지회장은 "문제는 휴식시간을 늘리는 것"이라며
"많이 쉬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자주 쉬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12시간 일하는 동안 점심시간 50분과 오후 3시30분부터 15분 등 두 번 쉰다.
그나마 점심시간을 둘로 나눠 교대로 식사하던 것을 지난해부터 관리직 사원들이 대신
주물라인을 지키게 됐다. 금형이 식으면 쇠 조직에 문제가 생겨 불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시 금형을 충분히 가열하는 데까지 3번의 불량이 발생한다.
32개 금형에서 3개의 제품을 다시 전기로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업계의 호황으로 생산량이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생산량과
직결되는 휴식시간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97년 기아자동차의 부도로 어려움을겪었던
노동자들도 생산량 문제 앞에서는 주춤할 수밖에 없다.

금형에 모래를 뿌리고 돌아서던 김종욱(40 주조과)씨는
"일하는 시간을 점차 줄이지 않고는 해결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노후한 공장 시설을 최신 장비로 바꾸는 것은 먼 미래의 바람이다.
우선 노조의 목표는 1시간 일하고 10분 휴식하는 것이지만
당장은 오전 휴식시간이라도 확보하려 한다.

이대목동병원 산업의학과 김정연 박사는
"장기간 열에 노출되면 열경련, 열실신, 열탈진 등 열사병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작업량을 줄이고 휴식시간을 늘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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