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일이 힘들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보더라도 여름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인정할만한 사람들이 있다.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거리에서 매연으로 호흡하는 환경미화원,
끝없이 이어지는 자갈밭 철로 위의 철도보선원 등이 그들이다.
여름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삶의 현장을 찾았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동부지역의 한 화물열차 전용철로.
철도선원들을 만나기 위해 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작업 현장까지 철길을 따라
걷는 동안 섭씨 40도를 훌쩍 넘는 복사열기에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20분을 걸었을 즈음 작업 중인 6명의 철도 보선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레일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열기 탓에 철도 보선원들의
얼굴은 이미 후끈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상기후나 폭서·혹한기 휴게시간 보장 절실"

그늘 한 점 없는 작업 현장


철길에서 일하는 보선원들은 열차충돌 등 빈번한 산재사고에 노출돼 있는 직종이기도 하지만, 여름철에 가장 고생하는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여름철 철길의 온도는 섭씨 60도까지 올라간다. 그늘도 없어 가끔 목을 축이거나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 쉴 때도 그냥 레일 위에 장갑 하나 얹어놓고 앉는다. 이렇고 보니 모자와 긴팔 상의로도 가릴 수 없는 목 뒷부분은 피부껍질이 벗겨져 검붉다.

박승기(가명·31세)씨는 "열차가 많이 다니는 경부선 같은 곳은 달걀을 깨서 올려놓으면 후라이가 될 정도로 뜨겁다"고 전했다. 그래도 방음벽이 설치돼 있어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던 전날 작업장보다 일하기 수월하다며 웃는다.

여름철에는 보선원들의 주업무인 장출(레일이 늘어나면서 엿가락처럼 튕겨나가는 현상) 예방, 침목교환, 자갈보충 외에도 제초작업과 철길 살수작업(열을 식히기 위해)도 추가된다. 비가 올 때도 낙석이나 옹벽붕괴를 감시하기 위해 철길순회를 계속해야 한다. 5명으로 구성된 이 선로반이 맡고 있는 구역은 6,500m. 그나마 최고 11㎞까지 맡는 다른 선로반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이들은 여름철 더위는 당연하다는 듯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철엔 더위로 짜증스런 것은 사실이나, 작업 자체의 노동강도가 워낙 높아 '더위'가 추가되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러나 한 노동자가 "마시는 대로 다 땀이 돼 나오는 것 같다"며 동료가 건네주는 물병을 손사래치며 거절할 정도이고 보면 더위와 싸우는 고생을 짐작할만 하다.

노조에서 여름철 대안으로 만든 '얼음조끼'는 어떤지 물었다. 박씨는 "무거운 것을 다루는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더 걸치면 불편하다"고 답했다. 열차를 빨리 피하기 위해선 하나라도 덜 걸치는 게 유리하다며 기관사 보일 수 있게 야광색 옷 하나 걸치면 된다는 것이다.

철도노조 이태영 산업안전차장은 "특별히 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에 보선원들의 의견을 묻고 있으며, 보선업무규정 개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차장은 "군대에서도 여름철엔 온도가 몇도 이상이면 훈련을 중단한다"며 "기후이상시 업무중단이나, 혹한기·폭염기 휴식시간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여름철 철길 작업장 땡볕에 섭씨 60도 육박

"더위보단 인력부족이 더 심각"


보선원들의 문제는 더위보단 인력부족이었다. 예전에는 한 선로반이 7∼8명으로 구성돼 있었으나 지금은 한, 두명씩 줄었다. 이날도 6명이 필요한 제초작업을 하기위해 세 개 선로반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레일 위에서 일하다 열차가 오면 하던 일을 멈춘 후 장비를 치우고 열차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인력이 줄었다는 것은 열차를 피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타 직종과 보선원들의 임금격차도 철도청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시설부문에 대한 아웃소싱 계획은 고용불안마저 부추기고 있다.

조연호씨(37세)는 "더위로 힘든 건 참을만 하지만 철도청에서 우리들의 인력부족이나 임금격차를 신경쓰지 않는데 불만이 많다"며 땀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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