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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월드컵으로 외국인근로자와 하나된 안산“대~한민국 함께 외치며 이방인 아닌 이웃임을 느꼈죠”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와요. ”

지난 7일 일요일 오후 6시 안산시 원곡동 복지관 앞 놀이터. 드럼채를 손에 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이하 센터)의 조명기(曹明岐·53) 집사는 드럼치랴 구경하는 사람들 부르랴 정신이 없었다. 음악 소리에 신이 난 마을 아이들은 벌써부터 조집사의 드럼 장단에 맞춰 이리저리 뛰어다다녔다. 조집사의 손에 이끌려 마이크를 잡은 젊은이가 멋지게 중국 노래를 부르자 어색하게 놀이터를 서성이던 사람들도 “앵콜 앵콜”을 연호했다. 머리가 긴 청년은 멋진 팝송을 선사했다. 청년은 자신을 ‘필리피노(필리핀 사람)’ 라고 소개했다. 한국 가요를 부르는 파키스탄인도 있었다.

이날 행사는 지난 6월 초부터 센터가 주최하고 있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하는 야외카페’ . 지난주 행사는 방글라데시 주민들이 담당했고 이번 행사는 중국인 주민들이 맡았다.


“한국주민들과 외국주민들이 서로 어울리는 데는 춤과 노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는 신시문(申?文·31) 센터 사무국장은 “월드컵 이후 한국인과 외국인 주민들이 놀랄 정도로 친밀해졌다”고 말했다. 외국인 주민들 틈에서 박수를 치던 주민 김영훈(金榮勳·40·안산시 원곡본동)씨는 “시끄럽긴요. 이사람들 때문에 마을에 생기도 있고 좋기만 하네요”하며 웃었다.

주민들의 화합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6월 22일 밤에 일어난 사건 때문. 마지막 승부차기로 한국팀이 스페인을 꺾고 월드컵 4강에 오르자 센터에 모여 경기를 지켜보던 5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원곡본동 거리로 뛰쳐나가 ‘대~한민국’ 을 외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인근 외국인 주민들과 한국인 주민들까지 합세해 300여명으로 늘어난 인파는 폭 5m의 거리를 매운 채 한 시간 동안 축제를 즐겼다. 외국인 주민들은 센터에 보관해 둔 인도네시아·파키스탄·스리랑카·방글라데시·필리핀·베트남 등 고국(故國)의 국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내달렸다.

이날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의 지하철 4호선 중앙역까지 달려갔다는 압둘 하만(Apdul Hamman·파키스탄)씨는 “붉은색 티셔츠만 입으면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한국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지만 진짜 한국 사람이 된 느낌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생활 6년째인 이스블람(Issublam·33·우즈베키스탄)씨는 “한국와 처음 배운 말은 ‘새끼’ 였지만 이제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어는 ‘대한민국’”이라며 웃었다. 안산시 고잔동 지하철 1호선 중앙역 광장에서 스페인전을 지켜봤다는 그는 그곳에서 함께 응원한 한국 젊은이들과 맥주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 젊은이들은 헤어지는 자리에서 ‘브라보 우즈베키스탄’ 이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월드컵 동안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친절한 한국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폴란드전은 안산시 원곡동·미국전은 안산시 고잔동·포루투갈전은 수원시, 16강부터는 서울의 신촌과 광화문에서 지켜봤다는 자비드(Javid·37·파키스탄)씨는 “한국사람들이 친절하게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볼수록 더 많은 책임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변화를 겪기는 한국인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축제를 지켜보던 김영희(金英?·여·46·안산시 원곡본동)씨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가게에 있던 음료수 36박스를 거리에 뿌렸다. “자기 나라도 아닌대 그렇게 기뻐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라는 김씨는 “돈으로 따져도 외국사람들이 소비해 주는 금액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뒤섞여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주민 김성원(金成元·28·안산시 반월동)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돈벌러 잠깐 왔다가는 사람 취급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서먹함을 가지고 있던 주민들도 월드컵 기간의 경험을 통해 변화를 겪고 있었다. “아이들이 외국인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막아왔다” 강성태(?成?·37·안산시 고잔동)씨는 중앙역 앞 광장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을 하면서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원곡동 일대의 노력과 변화를 가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체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다. 지난 7일 매주 일요일마다 센터가 열고 있는 법률상담소에는 평소처럼 50여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아와 상담을 받고 있었다. 스리랑카인 킬디(Kildi·33)씨는 “작업 중 넘어져 팔을 부러뜨렸지만 회사에서 치료비를 대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파키스탄인 시라지(Sherase·37)씨는 “4년 동안 일했지만 퇴직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를 보면 산업연수생 제도를 악용한 장시간 노동·임금과 퇴직금 체불·구타와 욕설 등 비인격적인 처우는 월드컵과 무관하게 남아 있었다.

10년 이상 외국인들과 이웃으로 지내온 원곡본동·원곡1,2동·초지동·고잔동·선부동의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를 위해서는 외국주민들과 협력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5월 센터가 안산시민 가운데 한국주민 121명과 외국인주민 201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5%가 ‘마을 운영에 외국인의 참여가 필요하다’ 고 답했다. 한국인 응답자의 50%가 ‘외국인근로자 때문에 지역경제가 활발해졌다’ 고 답했다. 40% 이상의 주민들이 ‘외국인들이 고유의 의상을 입고 고유어로 떠드는 것을 인정한다’ 고 답했다. 몇몇 주민들은 ‘외국인들이 가진 문화를 마을의 자산으로 이용해야 한다’ 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안산시 원곡동 일대를 ‘국경없는 마을’ 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추진 중인 센터 소장 박천응(朴?應·41) 목사는 “월드컵 기간의 경험은 인종차별이 없는 뒤섞임과 화합의 즐거움을 제공했다”며 “안산 밖에서도 우리의 이런 노력을 열린 마음으로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 작성에는 조선일보 대학원생 인턴기자 장준성(고려대 정치학과)·송순호(KAIST 생물과학과)·문정희(美조지타운대 정보문화기술학과)·왕혜숙(연세대 사회학과)·강민정(연세대 국제대학원)씨가 참여했습니다.

안용균 기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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