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이정식
경찰의 민주노총 위원장 폭행, 정부조직법상 노동부 서열 꼴찌, 이것이 현재 한국의 노동인권 및 노사관계의 현주소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조만간 개각이 있을 모양이어서 개각과 관련된 말들이 무성하다. 재경부와 교육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는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이 난망하여 개각을 먼저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하여, 여기서 사치스럽게 왜 노동부나 사회부처가 아니라, 재경부나 교육부가 부총리급으로 격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겠다.

다만, 노동행정과 이를 총괄하는 노동부 그리고 노동정책의 '빅3'라고 하는 노동부장관, 노사정위원장,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이 '국민의 정부'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 적절한지 여부와 노동부 개각이 어떤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노동부의 위상문제이다. 이땅의 노동자는 1,300만명이고, 노동조합원은 150만명이다. 노동부는 다가오는 21세기 자발성과 창의성에 기초한 지식기반사회를 대비한 인력개발과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책임질 주무부서이다. 아울러, 향후 중저성장 체제, 고실업 및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실업대책과 복지행정의 핵심부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확실하게 자리매김되지 않고 경제부처, 사회부처, 인력개발부처 및 공안부처 대책 회의에 약방의 감초처럼 '붙어'다니다가 결국, 인력개발 문제는 교육부에 넘겨주었다.

이상의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철학이나 비젼이 없거나 과거정권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경제와 치안 및 공안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1300만명의 노동자나 150만명의 노동자 어느 기준으로도 노동부의 낮은 위상은 설명이 되지 않거니와, 1300만명중 10%밖에 조직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혹여, '목소리 큰 사람이'이 제일이라는 논리에 정부 스스로가 빠져 있다는 자기고백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폭탄주와 파업유도 사건'이 발생하며, 노사분쟁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된 사실에 대해 노동행정의 수장인 노동부 장관이 사전에 전혀 몰랐다고 하는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금융노동자들이 노사정위원회 무용론을 제기하며,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고 총파업을 단행하자 사태가 수습되는 믿기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과거 정권은 차치하고 노동문제에 대해 이해를 많이 하고 있다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에 노동부 장관은 어떤 인물이 어떤 기준에 의해 임명되었는가 노동자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현재까지 세 명의 장관이 임명되었는데 모두 정통 경제관료, 내무관료, 보건행정 관료 출신이다. 임명과정에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자민련과의 관계, 지역안배 등이 감안된 점은 공통된 것이라 해도,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지역 출신 인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은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모두 실업대책과 신노사문화 창출이라고 하는 나름대로의 정책을 폈지만 노동행정의 수요자들에게는 피부에 와닿는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인력개발 등 노동문제에 정통한 사람을 노동부 장관에 중용했다. 여기서 미국 경제 장기호황의 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 정부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개각과 관련하여 늘 하던대로, 개혁성과 전문성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지 말아야 한다. 말은 안해도 국민은 누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알고 있다. 차라리, 이번 개각은 정파간 이해나 지역주의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든가, 아니면 별볼일 없거나 애물단지인 노동자는 안중에도 없고, 힘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의 소리만을 들었다든가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번 개각이 진정 '국민의 정부'의 그것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나 정파간 이해의 볼모가 되어선 안된다. 노동행정의 수요자인 노동자의 입장을 담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토대로 하여, 노동문제와 노사관계에 대한 해박한 전문 지식과 미래에 대한 비젼을 갖고 미래지향적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반기 이후 뜨거워질 공공 및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노동시간 단축 및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등 산적한 노동현안을 생각할 때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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