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만 34개 노조 설립 … 상담센터·조직국 '투톱'이 제 몫

"귀 조직은 현대재벌의 부당 퇴출에 맞선 현대중기산업 노동자 450일 투쟁에 참여하여 … 그 정신을 높이 기리고 보답하고자 현대중기 전 조합원의 뜻을 한데 모아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

글귀 그대로 450일간의 지난한 투쟁을 함께 한 데 보답하기 위해 노동계에선 흔치 않게 단위노조가 상급 연맹에게 감사패를 증정해 화제를 모았던 곳.

그 만큼 발로 뛰는 '현장 지원'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올해 상반기 동안에만 새롭게 조직해낸 조합원 수가 7000명에 이르고 노조 수로는 34개나 되는 곳.

"지역과 업종을 뛰어넘어 노동자의 단결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고…. 음, '동지가'를 왜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아닐까 싶네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을 '동지가'란 노래가 어울리는 곳이라고 실무 간부들이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곳. 바로 민주노총 서울본부이다.

"비정규직이나 미조직 노동자들은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노동자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고 민주노조 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굽힘없이 말하는 사람들. 힘은 들지만 가장 밑에서부터 탑을 차근차근 쌓겠다고 몸을 바닥까지 숙이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사람들을 지난달 29일 찾았다.

처음은 '작은 상담실' 지금은 '전문화된 법률지원센터'

점심시간을 겨우 한 시간 정도 남겨두고 서울본부 긴 탁자에 옹기종기 3∼4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상담중이다.

"출발은 작았습니다. 노동자들이 부당노동행위나 부당해고를 당해도 제대로 상담해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과근로나 휴일수당 등 노동자 입장에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들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일종에 '숨은 권리찾기'라고 부릅니다. 이런 것들에 착안해 상담센터를 신설하게 됐습니다."

윤명선 소장의 말이다.

서울본부의 상담센터는 작년 10월에 설립됐고 제대로 된 홍보도 없었는데 찾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상담내용도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민형사 문제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유별나게 많았던 것이 노조설립에 관한 상담이었다고 한다.

상담을 통해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에 관심은 있지만 법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윤 소장은 언급했다.

"노조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운영에 있어 조합원은 구경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죠. 다른 문제로 왔다가 상담을 통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설립된 경우도 꽤 많아요. 작년 1년 동안 서울본부에서 18개 노조를 세웠는데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만 34건입니다."

이런 성과로 상담센터가 지난 25일 사단법인인 노동법률지원센터로 새 출발했다. 상담업무가 일반수준의 상담이 아닌 집중적 전문화가 요구되면서 현재의 인원과 예산 규모로는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종횡무진 조직국

"저는 머리와 눈을 다쳤구요. 사무차장님과 조직국 여성 동지도 머리를 다쳤어요. 중부의장은 20바늘, 동부의장은 15바늘을 꿰맸습니다. 한마디로 요즘 서울본부는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머리의 상처 때문인지 모자를 눌러 쓴 박상윤 조직부장의 너스레다.

서울본부 조직국은 지부협의회를 포함해 모두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포괄하는 사업장이 630개 정도고 현재 서울본부에 직접 가입한 노조만 17개 4500명에 이른다. 조직부원 한 사람당 4개 정도 투쟁사업장을 맡아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조직화가 힘듭니다. 그런데도 노조를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고민을 한 뒤일 겁니다. 불안감이 클 것이라 생각해 우선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다른 사업장의 이야기도 해주고 법적으로 교육도 시키고 민주노총이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을 현장 투쟁 속에서 보여줍니다."

비정규직이 노조 설립도 어렵고 유지하기도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는 박상윤 조직부장. 작년에 설립된 서울대 시설관리노조의 아저씨, 아주머니 조합원들이 40일 이상 파업을 하면서 결국 승리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반면 힘든 일도 없지 않았다.

"경찰들에게 맞을 때 자존심이 상한다"는 박 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더 가슴 아픈 건 노동자들끼리의 갈라짐이죠. 한국통신노조가 규약에도 명시돼 있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가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더 큰 벽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서울본부가 업종을 뛰어넘어 조합원들이 다른 사업장의 고민을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연대투쟁을 자주 지원하는 건 큰 벽을 넘어서기 위한 나름의 해법이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다시 만난 '서울본부 사람들'

지난 29일 서울역에서 1만3000여명이 참가한 '신자유주의 공안탄압 분쇄 김대중 정권 규탄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중앙투쟁 현장에서 서울본부의 위치는 무대 옆 외곽이다.

"중앙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곽에 있다가 도움 줄 일을 한다든지 노숙자들이 방해를 할 때 타이르기도 하는 등 질서유지를 하죠." 중부지방 최재풍 의장의 경쾌한 목소리다.
직접 가입 노조가 늘면서 중앙집회 때 참가대오를 챙기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며 최 의장은 통인가게 조합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거리행진을 알리는 '동지가'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분주히 자리를 정리할 무렵, 서울본부 김진억 사무차장과 시작한 대화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까지 이어졌다.

"비정규직 사업을 중점사업으로 명확하게 설정했고 상담센터의 운영, 조직국의 적극적인 투쟁 등 사람의 배치와 물질적 지원들이 적극적으로 뒤따라주었습니다. 너무 미조직·비정규직 사업만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울본부 역량의 70%이상을 거기에 쏟았습니다."

재능교육교사노조, 서울대 시설관리, 방송사 비정규직 등 서울본부가 일궈낸 성과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열매를 맺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비정규직의 확대를 막아내는 것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시키는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열악하고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서울본부는 그 역할을 현장에서 묵묵히 해나갈 것입니다."

김 차장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들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본부는 하반기엔 미조직·비정규직 노조 설립을 계속 추진하는 동시에 법제도 개선에도 힘을 쏟을 방침이라고 한다. 김 차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민주노조 운동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얘기가 끝나갈 무렵 열지어 행진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부르는 '동지가'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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