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계약직노조원들은 지난 2000년 말부터 517일동안 파업을 벌이면서 계약직에 대한 사쪽의 일방적 계약해지 등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알리기 위해 여러차례 기습시위와 농성을 벌였다.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 된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이 13일 유성에서 조합원총회를 마치고 517일의 파업을 접었다.

희망자에게 올 상반기 중 도급업체 취업 알선, 위로금 지급 등 회사와 합의한내용은 파업 초부터 회사가 내놓은 안에서 달라진 게 별로 없는 초라한결과물이다. 12일부터 이틀 동안 계속된 조합원총회에서 조합원들은 아쉬움과허탈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결국 합의문을 통과시켰다.

“이런 합의문에 서명을 하다니, 잠도 안온다. 조금이라도 해결 실마리가보였다면 이런 합의는 안했을 거다. 그렇지만 1000일을 싸운다고 해도 방법이없다.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 최봉준(31)대외협력국장의 말처럼 이들에게 `비정규직'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신분'의 굴레와도 같았다 “500일 넘게 돈한푼 벌지 못하고 집을 떠나 지내다보니 모두들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사회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으로 파업을 정리했다. ” 구철윤(40) 상황실장의 목소리도 잠겨 있다.

정규직 외면속 목숨건 '비정규직전' 한뎃잠 고공투쟁..잇단 패소 '법도 울타리밖'"얻어낸건 위로금뿐..차별 언젠가는 없어질것"

2000년 11월, 70~8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회사의약속을 믿고 궂은 일을 도맡아하던 계약직 7000명에게 한국통신은 계약해지를통보했다. 정규직 노조에도 가입할 수 없었던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노조를설립했고, 그해 12월13일 영하 15℃의 혹한 속에서 전국에서 올라온 조합원450여명이 분당 한국통신 본사 앞에서 노숙을 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꽁꽁 언 바닥위에 스티로폼을 깔고 비닐을 덮고 자고 일어나니 입김이 얼어붙어 머리에서고드름이 우두두 떨어졌다. 쌈짓돈은 금세 떨어져 라면 한끼와 도시락 한끼로 하루를 넘기는 배고픈 날들이 이어졌다. 지하철이라도 타면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저만치 물러섰다. 어려운 생활 때문에 처음 조합원 1200명중 이제 남은 사람은211명이다.

한강대교위 농성, 목동전화국 점거, 비바람 속 8m 높이 광케이블 위 고공농성, 국회 의원회관 옥상 농성, 국회 본회의장 진입 시위, 세종문화회관 옥상 시위…“한통계약직 노조가 뭐냐”는 세상을 향해 “비정규직의 목소리 좀 들어달라”며 이들은 목숨을 걸고 숱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노숙 농성을 하면서 한승훈 조합원이장파열로 세상을 떠났고, 이동구 조합원은 뇌출혈로 반신마비가 됐으며, 198명이 구속됐고, 벌금과 손해배상액만 3억2천만원이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 월급은 절반도 받지 못한 부당함에 대한 소송도, 2년 이상 근무를 했으니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소송도 모두 패소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법도 비정규직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고, 계약직 문제를 남의 문제로 바라보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도와주지 않았다. ”고 섭섭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 오랜 투쟁 동안 정규직 노조는 지원 한번 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희망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봉준 국장은 “사람들이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많이 알게 돼 기쁘다. 그게 517일 투쟁의 가장 큰 결실이다. 끊임없이 알리려는 절규들이 모여서 비정규직 차별이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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