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련의 모태…"정당한 교섭으로 보장받고자 공무원노조로"

" IMF이후 구조조정 거치면서
인력의 1/4이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서너명이 하던 일을 이제는 한두명이서 해야 합니다. 업무량은 늘고 임금과 복지수준은 제자리고…. "



그래서 그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용자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노조를 만들었다고,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지도부에 대한 구속과 해고가 이어졌다. 지도부는 경찰이 접근할 수 없는 성당에서 농성에 들어갔고 조합원들은 희생자 구제기금을 모으고 있다. 조직을 정비하고 사용자들에게 노조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도 계획하고 있다.

■ '철밥통'의 대명사 노동자임을 선언하다
IMF이후 인력감축 중심의 구조조정을 겪고 떠나는 사람들 지켜보며 강화된 노동강도에 한숨짓는 일반 기업의 노동자들 이야기가 아니다. 조합원들이 어렵게 만든 노조를 지키기 위해 해고와 구속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이야기도 아니다. 한때는 소위 '철밥통'의 대명사이자 부족한 임금과 복지는 '뒷돈'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들, 바로 공무원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스스로를 '사회의 약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줄 조직, 노동조합을 원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부패와 부정이라는 '임금보전 방식'과 '퇴직 후 생활안정 자금'이 아니라 정당한 교섭을 통해 안정적 일자리와 일한 만큼의 대접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하는 것이다.

노동자이길 선언하고 나선 공무원들을 서울 강동구청에서 만났다.

■ 서울지역 최초로 공직협 구성
강동구청 공무원직장협의회는 지난 99년 9월20일, 공직협 중에서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설립됐다. 그런 만큼 서울지역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서공련)의 모태가 됐으며 구속된 김병진 공직협 회장이 서공련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현재 서공련은 전국공무원노조의 출범에 따라 서울지역본부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으며 오는 20일 출범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김위원장은 경선으로 치뤄지는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역 본부장에 옥중출마한 상태다.

그러나 처음 만들어질 때 쉽지만은 않았다. 공무원 사회의 특성 상 마음은 있어도 선뜻 나서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하나씩 바꿔나가는 것 말고는 공무원들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기 어려웠다.

" 처음에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집행부 꾸리고 임원구성하는 것부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임원구성한 후에도 회의에 나오지 않아 회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 구청에서 지방세와 자동차세 부과 업무를 담당하던 김형철 수석부회장 겸 사무국장은 말한다. "처음에는 다들 그런 게 있는가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수련회 거치고 직원들 편에 서서 부당한 지시나 부정부패들을 몰아내기 시작하면서 직원들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도부도 강화되기 시작했구요. "

■ 내부 부조리 하나씩 사라져
공직협이 만들어지면서 직원들의 임금에서 부서비를 각출해 부서장의 식대 등으로 사용했던 관례도 없어졌다. 형식적이던 후생복지 위원회에도 참석하면서 구내식당의 식단 개선을 이루는 등 하나씩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불우 직원돕기, 가뭄피해자 돕기 등 기초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전에는 구청장의 시각에서 바라보던 후생복지 개선이 직원들의 눈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직원들의 최대 관심사였던 인사문제에 적극 개입해 인사제도도 개선은 직원들에게 공직협의 필요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5급 사무관 승진문제에 대한 성명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구청장 면담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해 결국 '다면평가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이전까지 상급자의 결정과 지시만 따르던 사람들이 하급자도 상급자를 평가하게 되면서 인사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며 공직협의 중요 성과로 인사제도 개선을 꼽았다.

뿐만아니라 공직협이 결성되면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내부자정작업도 활발해졌다. " 공직협이 적극적으로 나서 부정부패 공무원들을 철두철미하게 배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고위자든 하위직이든 비리가 나타날 징후가 보이면 적극적으로 대처했고 여기에 인터넷도 중요한 역할을 했죠. " 구청 입구에서 만난 직원은 "공직협 만들어지고 제일 많이 변한 것 중 하나가 내부의 부당한 지시나 부패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고 말한다. 강동구청 공직협은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기적으로 인근 지하철역에서 공무원비리 근절을 위한 대시민 선전전도 진행하면서 내부 결속도 다시고 국민적 지지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 커
이러한 공직협 활동에 대한 직원들의 지지가 가능한 배경에는 공무원구조조정에 대한 불안의식이 깔려 있다. 이미 2단계의 구조조정을 통해 120만이던 전국 공무원이 90만으로 줄어들었으며 강동구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명예퇴직과 조기퇴직, 의원면직 등으로 구청을 떠났다. 그러나 감소인원에 대한 충원은 이뤄지지 않으면서 고용불안에다가 과도한 업무량까지 떠 안게 된 것이다.

더욱이 오는 7월말로 예정된 마지막 구조조정에서는 서울시에서만 1,000여명의 공무원들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초과인원이 기능직과 고용직에 집중돼 있어 이들에 대한 대량 직권면직마저 우려되고 있다. 또한 기능직, 고용직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결원은 곧바로 일반공무원들의 고용불안과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 공무원들이 고용불안을 자기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하위직 공무원은 재직기간이 짧아 명예퇴직도 어렵고 전직이나 전업도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고위직들이 나가야 하는데 공무원사회가 그렇게 안되는 거죠."

이에 따라 서공련은 현재 서울시에 초과현원이 자연감소될 때까지 별도정원으로 관리하던가 직권면직을 1년간 유예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 공직협으로는 구조조정 못 막아…노조결성 나서
이들이 노조를 만들려는 이유도 공직협으로서는 구조조정을 막고 공직사회를 개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직협과 사용자의 관계가 불분명해 권리를 제대로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사관계라는 대등한 관계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바람이 곧바로 공무원들을 행동하게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성동구청의 경우 1,200여명의 직원 중 932명이 공무원노조에 가입서명을 했으나 아직 대내적으로는 공직협이라는 이름을 당분간 사용할 계획이다. 공무원노조 지부로 전환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 대부분이 공무원노조의 결성을 바라고는 있는데 아직 앞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 겁니다. 공무원사회가 워낙 보수적이다 보니 안정기조 속에서 움직이게 되는 거죠. "

그러나 지도부에 대한 지원열기는 뜨겁다. 이미 구속된 간부를 위해 600여만원의 성금을 모금해 가족에게 전달했으며 희생자 구제기금 자동납부 가입자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전교조의 민주화보상 대상자 인정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금은 지도부가 탄압받지만 결국에는 정부도 노조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는 필요하지만 피를 흘리지는 말았으면 합니다"는 이들의 바람이 당분간 실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번주 말 서울본부를 비롯한 전국 21개 본부가 결성되면 공무원노조와 정부의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0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한 공무원은 "이제 공무원은 사회적 약자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현대사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투쟁'이란 단어를 익숙하게 만들어 왔음을 돌아볼 때 "합법적인 틀 내에서 활동해야죠"라는 또 다른 나이든 공무원의 인식을 어떻게 조직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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